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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여명(黎明)

츠쿠리 2016. 12. 15. 18:08

 

 

 

 

 

[불멸의 이순신] 여명(黎明)

W.B - 츠쿠리

 

 

 

 

 

 

 

 

 

둥-둥-둥-

 

북이 웅장한 전진의 소리를 온 힘을 다해 외치고 있다. 붉은 피보라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져가는 몸들과 땀이 비오듯 흐르는데도 닦기는 커녕 온 힘을 다해 무기를 움켜쥐는 굳센 손들이다. 거센 소리와 함께 포탄의 잔해들이 부서지는 파도를 때린다. 이 모든 장면들 속에서 감겨지는 눈꺼풀 사이로 희미하게 비춰지는 것은 아련한 여명의 빛이다.

 

모든 소리가 멈춘다. 오직 들리는 것은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소리뿐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칼날이 되어, 이 세상 모든 생(生)의 움직임을 앗아간다. 무거운 몸뚱아리를 이끌고 살아왔던 지난 삶 동안 단 한 순간도 놓지 못했던 검이 맑은 소리를 내며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져내린다.

 

 

"-장군! 들리십니까요 장군! 승리의 함성이어라! 우리 조선 수군이 적들을 모조리 이 바다에서 싹 다 물러나게 만들었구만유!"

 

 

그러한가. 승리하였는가.

가라앉으려는 침묵의 세계를 뚫고 도달한 마지막 전언. 이것으로 삶의 마지막 미련의 끈이 끊어졌다. 이제 감겨지는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세계는, 적막과 떨어지는 여명의 색만이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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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거 빨리 오지 못해? 참 꾸물꾸물거리면서 오는구만? 어여 가자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 한잔 해야지!"

 

"아, 원균형님. 그 동안 잘 계셨습니까. 일단 문안 인사부터 올려야…."

 

"어허! 거 참 사람하고는 하나도 안 변했구먼! 만나자마자 고지식한 소리부터 늘어놓지 말고 빨리 와서 술이나 따라! 하여튼간에 유성룡이가 사람 한 명 버려놨어. 아! 그러고보니 그 놈은 언제 온다고 그러더냐?"

 

"서애(西厓) 형님 말씀이십니까? 글쎄요, 아마 한참 후에나 오시지 않을까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을 테니까요."

 

"에라이! 또 기다려야 한단 말이냐? 네 녀석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지쳤거늘…! 하여간 성룡이 그 놈, 예의 차리면서 늑장 부리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안 그러냐 순신아?"

 

"서애(西厓) 형님도 일이 있으셔서 그런건데 단편적인 부분을 들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형님."

 

"에잉, 쯧쯧! 사람이 재미없기는. 못 본사이 더 깐깐해졌어. 아 그냥 우리끼리 먼저 시작하자고! 저 봐, 저 많은 사람들이 다 목이 빠져라 기다리잖냐. 미진 낭자도 너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어! 만날 오라버니, 오라버니 하는데 내가 다 지쳤다니까? 하하하-"

 

 

투박한 손이 어깨에 얹혀진다. 오랜만에 느끼는 따스함에 눈을 감았다가 뜬다. 아련한 여명이 비추는 희미한 길 끝에 보이는 그립고도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반긴다.

 

 

 

 

 

 

 

 

 

 

아아, 이 얼마나 찬란한 여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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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글.

 

 

불멸의 이순신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써봤습니다.

마지막화에서 아침 해가 솟아오르면서 이순신을 비추고, 이순신이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이순신 장군님의 사망 후 좀더 많은 장면들을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선조의 후회라던지 유성룡의 눈물이라던지....그리고 이순신 장군님의 휘하 장수들의 뒷 이야기도 조금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원균과 미진, 남궁두 등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장군님의 뒷 모습도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만 끝내 보여주지 않더군요ㅠㅠ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역사에서는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최소한 드라마 속에서만큼은 훈훈한 친구이자 의형제 사이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원균과 만나는 장면은 꼭 쓰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