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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빅터앙리] Because you're beautiful

츠쿠리 2016. 12. 16. 00:05

 

 

 

 

 

[프랑켄슈타인/빅터앙리] Because you're beautiful

W.B - 츠쿠리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마을의 장터를 걷고 있었다. 햇빛은 따갑도록 내리쬐었고, 장터는 떠들썩하다 못해 시끄러웠다. 심지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나머지 몸을 툭툭 치고 지나가는 것은 다반사였다. 이런 젠장. 빅터는 나지막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평소 같으면 성에 처박혀 나올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터다. 성에는 딱히 부족한 것이 없었고 저를 대놓고 싫어하는 마을 사람들을 굳이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니까. 사실 빅터가 성을 나올 때는 저녁 늦게, 그것도 무덤을 뒤지거나 가끔 술을 마시고 싶을 때 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마을로 나온 이유는 정말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부족함이 없었던 성에 식료품 고갈이라는 큰 문제가 닥쳐왔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룽게가 알아서 처리하고, 식료품을 조달해와서 신경쓰지 않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슈테판 숙부에게 잠시 다녀온다는 이유로 룽게가 일주일 간 집을 비웠던 것이다. 물론 충실한 집사이니만큼 가기 전에 식품 저장고를 가득 채워놓았기는 했다. 다만 새벽에 그 식품 저장고가 반쯤 불타버린 것이 문제였다.

 

실험을 하다가 폭발한 것은 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으니 그럭저럭 넘어갔다. 그러나 불씨가 식품 저장고로 옮겨 붙은 것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재빠르게 움직여서 불이 더 크게 번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식품 저장고에 남은 것은 너무 타서 먹을 수 없는 햄과 와인 정도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남은 것으로 버텨보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요리에 재주가 없는데 재료마저 형편 없으니 결국 한계에 도달했다. 애초에 도련님으로 고이 자라난 빅터와 요리라고 해봤자 스프와 빵에 잼을 바르는 게 전부인 앙리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원래는 앙리에게 마을에 다녀와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으나 불을 끄느라 그을음 범벅이 된 채 지쳐서 잠이 든 친구를 보고 있자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빅터에게 남은 선택지는 어떻게든 마을에 가서 식료품을 가져오는 것 뿐이었다.


그것이 현재, 빅터가 새까만 로브를 뒤집어쓰고 마을 장터를 기웃거리고 있는 이유였다. 빅터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로브가 잘 덮여있는지 확인하고는 재빠르게 가게로 들어가 야채와 과일, 고깃덩이를 샀다.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날이 너무 더워 로브를 쓰고 있는 것도 슬슬 지쳤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식량을 확보한 빅터는 그제야 여유가 좀 생겨서 숨을 돌렸다. 그리고 목이 마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긴장해서 그런지 몸이 타들어가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빅터는 저도 모르게 마을 구석에 있는 선술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앙리가 옆에 있다면 낮부터 술이냐고 한 소리를 할테지만 지금은 옆에 없지 않은가. 빅터는 당당히 선술집에 들어가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자 약간의 안면이 있는 선술집 주인이 재빠르게 맥주를 내어왔다. 빅터는 로브가 흘러내리지 않게 주의하며 목을 축였다. 시원한 맥주가 목으로 흘러들어갔고 이 순간만큼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이지 않았다.


갈증이 진정되자 빅터는 그제야 선술집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날이 더운 탓인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왁자지껄했다.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이 역겹게 느껴져 픽, 하고 비웃음을 머금었다. 이렇듯 사람이 많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가령, 성으로 돌아온 재수없는 마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거나?



"그러고보니 그 이야기 들었어?"


"성으로 돌아온 빅터 프랑켄슈타인 말인가? 요새 그 이야기 모르는 사람이 어딨나!"


"그러게 말일세. 마을이 한동안 시끄러웠던 게 그 남자 때문이 아닌가. 대체 성에 틀어박혀서 뭘 하는 건지. 간간히 뭔가 큰 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데 불길해 죽겠어."



호오, 빙고. 빅터는 제 예측이 맞았다는 것에 대해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술을 들이켰다. 어딜가나 제 이야기는 수다거리였다. 미친 놈부터 시작해서 재수없는 자식 등 다양한 호칭들이 이름을 대신해서 불리워졌고, 한동안 입방아 위에 올랐다. 


어디 오늘은 무슨 말이 나오나 한 번 들어볼까. 빅터는 여유롭게 술을 홀짝였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무슨 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피어오르기까지 했다. 대체 이 자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호기심이었다.


당사자가 엿듣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한동안 빅터의 이야기로 대화의 장을 열었다. 그러나 대부분 근거없는 똑같은 이야기들이라 빅터는 서서히 지쳐갔다. 호기심이고 뭐고 별 거 없군. 그렇게 빅터가 대수롭지 않게 평을 내리고 성으로 돌아가려고 막 채비를 할 때였다.



"그러고 보니,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혼자 온 것이 아니더군."


"아, 맞아! 전우인지 친구인지, 하여간 허여멀건하게 생긴 남자가 하나 더 따라왔던데?"



허여멀건하게 생긴 거면, 앙리를 말하는 건가? 빅터의 호기심이 다시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빅터는 채비하던 것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과연 이 사람들이 앙리에 대해 뭐라 평가할 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사람들의 화제는 빅터에서 빅터와 같이 온 남자, 앙리 뒤프레에게로 초점이 넘어갔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따라온 것 치고는 꽤나 곱상하게 생기지 않았던가?"


"맞네. 궂은 일을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 뭐랄까, 그런 외모를 보고 단아하다고 하나?"


"예끼! 남자에게 그게 할 소리인가!"


"하지만 정말일세. 얼굴도 분을 바른 여자마냥 허옇고, 얼굴선이 꽤 곱던걸?"



…앙리가 단아해? 고와? 빅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사실 빅터는 한번도 앙리의 외모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저 그 자체만으로 너무 소중해서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앙리는 제 이상에 공감해준 친구이며,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앙리의 논문을 처음 읽었을 때 얼마나 전율했던가. 그리고 마침내 마주했을 때, 그 떨리는 감각은 모처럼 살아있다는 느낌을 일깨워주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온갖 전쟁터를 뒤진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빅터에게 앙리란 운명 그 자체였다.



"뭐야, 자네 왜 그리 극찬을 해? 어디 가까이에서 봤나보지?"


"이런, 들켰나? 실은 저번에 잠깐 마을에 내려왔을 때 봤는데 정말 곱더라구. 우리 집 마누라랑은 비교가 안 되던걸? 분위기도 정말 죽여줬고 말야."


"어허, 자네 마누라에게 일러 줄 걸세?"


"아이고, 무서워서 어디 말 함부러 하겠어? 집으로 얼른 도망가야겠군!"



앙리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을 늘어놓던 사람들은 어느덧 자리에서 슬슬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빅터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뭐라 말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유독 앙리에 대한 것은 신경이 쓰였다.


앙리가, 곱다고? 다시 한 번 사람들이 한 말에 대해 곱씹어보던 빅터는 갑자기 그의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빅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머니에 있는 돈을 주인장에게 대충 내던졌다.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마냥 급하게 선술집을 빠져나와 성으로 향했다. 뇌리가 앙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   ◈   ◈











마을에서 돌아온 빅터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의 친구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기껏 사온 재료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숨을 헐떡이며 실험실에 들이닥친 빅터는 앙리가 없어서 순간적으로 당황해했다. 이 시간쯤이면 실험실에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방에 있나? 빅터는 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왠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초조했다. 앙리의 얼굴을 봐야지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앙리의 방문 앞에 도착한 빅터는 조심스레 노크를 했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조급함에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인지 앙리는 아직도 얼굴에 검댕이를 묻힌 채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세상 모르고 자는 그 얼굴을 본 순간,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빅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앙리를 깨우는 대신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턱에 괴고 멀거니 얼굴을 응시했다.


아직도 머리 속에는 선술집에서 사람들이 나눈 말들이 윙윙거리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느새 빅터는 사람들의 말을 떠올리며 앙리의 얼굴을 요목조목 살펴보고 있었다. 사실 빅터의 주변에는 아름다운 여자들이 많았다. 그의 누나인 엘렌은 현숙하고, 단아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고 약혼녀인 줄리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화려한 미인이었다. 거기에 유학가서 만난 여자들 또한 아름다웠다. 그의 곁에는 하나같이 외모에 뒤지지 않는 미인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왜일까? 점점 볼수록 이제까지 본 그 어떤 여자보다, 앙리가 고와 보였다. 곱다는 말이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도 앙리에게는 그 어떤 수식어보다 잘 어울렸다. 턱선은 선이 얇고, 매끈했으며 눈매나 입, 코도 뚜렷했다. 앙리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빠지는 곳이 없었다. 분위기는 나긋나긋했고, 목소리도 조곤조곤하니 듣기 좋았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속눈썹도 길군. 빅터는 저도 모르게 손을 앙리에 눈가에 가져갔다. 순간적으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면서 흔들렸다. 그리고 속눈썹이 위로 들리면서 그 사이로 맑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잠에 취한 듯 흔들리던 눈동자가 서서히 초점을 잡으면서 또렷해졌다. 이윽고, 앙리가 온전히 눈을 떴다.



"…빅터?"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게 누군가의 손이라는 것에 놀랐는지 앙리가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나 빅터는 손을 치우지 않았다. 아니, 치워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앙리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빅터를 잠시 보다가 손을 조심스레 치웠다. 그리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어 번 기지개를 펴던 앙리가 투덜거렸다.



"잠에서 깨우려면 좀 얌전히 깨우는 게 어떤가? 일어나자마자 보이는 게 손이라니, 너무 하잖나. 놀랐단 말일세."

 

"……."

 

 

그러나 빅터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저 멀거니 앙리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앙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빅터를 바라보았다.

 

 

"…빅터? 자네 왜 그러나? 혹시 몸이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가?"

 

 

몸이 아픈 건 아니었다. 앙리가 하는 말도 제대로 들렸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빅터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왠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 앞에 앙리가 있었다. 살아 있는, 생명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그의 친구 앙리 뒤프레. 그가 제 눈 앞에 있는 것이 정말 운명같아서 신께 감사드리고 싶어졌다. 빅터는 저도 모르게 떨리는 입술을 열고 나지막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자네가, 예뻐서."

 

 

빅터는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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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작.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앙리의 얼굴은 목에서부터 귀까지 빨개졌다지요.

처음에는 그저 단순히 예쁘다는 말을 앙리에게 해주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이런 글이 나왔습니다.

 

앙리는 빅터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일테니까 그 존재만으로도 좋아서 감정을 자각하지 못하다가 문득 깨닫는 거죠.

그리고 그걸 깨달은 순간 앙리 뒤프레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감격스럽고 더 소중히 여길 것 같다는 그런 빅앙 뻘 글입니다:)

 

빅앙 행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