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스일/푸딩장관] 몽중몽(夢中夢)
[혐스일/푸딩장관] 몽중몽(夢中夢)
W.B - 츠쿠리
정상결전의 부상에서 깨어난 이후, 장관은 잠이 늘었다. 그냥 수면시간만 늘어난 거라면 부상의 일환으로 치부하고 끝냈을 터이지만 안타깝게도 일은 그리 쉬이 돌아가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장관은 저녁에 충분한 수면을 취했음에도 낮에 픽픽 쓰러져 잠에 빠지곤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독한 약 기운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임무에 다녀온 카쿠가 이제는 잠꾸러기 곰이라도 된 거냐며 놀릴 때도 그럭저럭 봐줄만 했다. 문제는 잠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두 번 정도였다. 시간도 십 분에서 십오 분 사이였으니 낮잠으로 치부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일주일 후, 횟수는 다섯 시간에 한 번으로 줄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면 주기는 점점 짧아졌고 이제는 두 시간에 십오 분은 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기면증입니다.
커틀릿이 말했다.
-밤에 충분히 잤다고 생각되는데도 낮에 이유 없이 졸리고 무기력감을 느끼는 증세로, 흔히 졸음과 함께 갑작스러운 무기력증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선잠이 들어 착각과 환각에 빠지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약을 처방하기는 하겠으나 현재로서는 고칠 방법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커틀릿은 살벌한 분위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말을 이어나갔다. 고칠 방법이 없다면 불치병인가? 어쩐지 설명도 사전에서 베껴온 거 같더라니. 장관은 영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하품만 연거푸 내뱉었다. 잠꾸러기라고 놀려대던 카쿠는 이제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침통한 분위기에 장관은 목만 긁적였다.
-그냥, 잠이 늘어난 거니까 너무 그렇게 심각해지지 마. 시력 나빠진 거랑 비슷하지 뭐.
이제 아카이누 면회도 잠을 이유로 거절할 수 있겠네. 잘 됐다.
나름 회심의 농담이었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장관은 잠들 때마다 꿈을 꿨다. 보통 꿈은 알아채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어쩐지 기면증에서 흘러나오는 꿈은 눈치 채기 쉬웠다. 그도 그럴 게 절대 제 곁에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 매번 나왔기 때문이다.
-장관님
그렇게 부르며 너는 웃었다. 샛노란 커스터드 크림처럼 달콤해 보이는 미소였지만 그 달콤함 속에 카라멜처럼 쌉싸름한 맛이 뒤섞여 있다는 걸, 장관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꿈이라는 걸 알아차렸음에도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 꿈의 지배자는 당신이 아니라는 것 마냥 너는 꿈을 손아귀에 쥐고 마구 주물렀다.
꿈속의 세상에서는 시간이 아주 빨리 흘렀다. 현실에서는 고작 십오 분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장관은 꿈에서 지난 8년의 세월을 흘려보내곤 했다. 그리고 그 8년의 시간 동안 장관의 옆에는 그가 있었다. 마치 이 곳이 자기 자리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리고 꿈의 마지막, 그는 매번 에니에스 로비의 계단에서 장관을 밀었다. 때로는 미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단검을 던지고, 품속에 숨겨놓은 총으로 쏘고, 때로는 뜨거운 불길로 장관을 지져 죽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살해 방법을 그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네게 죽었다.
어느 날, 불연 듯 네게 죽는 게 지긋지긋해졌다. 장관은 커틀릿을 불러 기면증 증세가 나타나는 동안 매번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꿈의 내용은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대충 매번 나쁜 꿈을 꾸는데 그 꿈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커틀릿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믿을만한 정신과 의사를 데려왔다. 그는 꿈꿈 열매의 소유자로 꿈속에 나오는 물건을 지정하라고 했다. 무의식 속에 그 물건이 탈출구라는 암시를 걸어 놓겠으니 그걸 방아쇠로 지정해 꿈에서 탈출하면 된다고 했다.
장관은 그 물건을 진통제로 정했다. 진통제는 적어도 항상 장관의 손길에 닿는 곳에 있었다.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언제나 한결같이. 그래,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다.
장관은 이제 꿈이라는 것을 지각하자마자 진통제를 먹었다. 진통제를 삼키면 꿈속의 그는 생글생글 웃던 게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어느새 얼굴을 싸늘히 굳히고 제 이름을 말한다.
제 이름은 커스터드 카라멜, 혁명군입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사라진다. 이 곳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게 뻗은 길로 나아간다.
그제야 장관은 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동안 지독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퍽 허무하면서도 깔끔한 결말이었다. 장관은 이제 수십 번의 죽음에서 벗어나는 대신 수십 개의 진통제를 먹었다. 진통제는 일종의 신경안정제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만약 그가 마음을 바꿔 그를 다시 수십 번 죽인다고 해도, 적어도 고통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장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졸린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터포키는 어디가고 또 그가 서 있었다. 그는 어쩐지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생글생글 웃던 얼굴은 어디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기묘한 얼굴이었다.
이질감이 들었지만 그 뿐이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수작으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걸까. 빨리 먹지 않으면 또 불로 지질지도 몰라. 작열통은 진짜 두 번 겪을 게 못 되던데.
장관은 품에 넣어두던 진통제 병을 찾아 더듬다가 탁상 옆에 병이 있는 걸 발견했다. 장관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기존의 꿈은 집무실에서 시작하더니 꿈속의 꿈은 병실이구나. 이것도 잘 기억해둬야겠다.
장관은 진통제를 털어 입에 우겨넣었다. 너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지는 게 어쩐지 통쾌했다.
아, 빨리 꿈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
장관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