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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삼총] In the after 1

츠쿠리 2018. 1. 10. 00:58

-본편 완결 이후의 이야기

-상상과 날조주의








[우삼총]In the after 1

W.B - 츠쿠리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에이스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바람을 가르며 쇄도하는 마그마에 나지막이 탄식이 터져 나왔다. 결국 여기까지인가. 형제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울부짖었다. 그러나 에이스는 지금이 한계라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면 이미 4년 전에 그의 시간은 멈췄어야 했다. 아버지와 에이미가 대가를 치러 멈췄어야할 시간을 억지로 이어붙인 것뿐. 지금에서야 그 대가를 치러야할 때가 오고야 만 것이다.

 

그래도...’

 

좀 더 살고 싶었는데. 좀 더 살아서, 형제들과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고 싶었는데.

 

수많은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소중한 형제들을 비롯해서 최근에야 겨우 셋이서 재회하게 된 사보와 루피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그의 뇌리를 가득 채운 사람은 환하게 웃던 에이미의 얼굴이었다.

 

미안, 에이미. 평생을 다 바쳐 스물한 살을 맞게 해줬는데, 그 운도 이제 끝인가 봐.’

 

바로 직전까지 다가온 열기를 느끼며 에이스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

 

바로 그 때, 날카로운 검의 이명이 들렸다.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고 시원하리만큼 청량한 목소리가 빈자리를 채웠다.

 

평생을 다 바쳐 스물한 살을 맞게 해줬더니 이제는 스물다섯이에요?”

 

이제는 은퇴해서 평화로운 민간인이 됐는데 아직도 에이스 씨 뒷바라지를 해야 하다니! 아이고 내 팔자야! 그러나 투덜거리는 목소리에는 정작 안도가 가득해서, 에이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이미!”

 

그 누구보다 든든한 형제가 에이스의 앞을 등지고 섰다. 아카이누는 어떤 공격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에 가로막혔다. 온 몸을 가리도록 뒤집어쓴 검은 로브 사이로 부스스한 연보라색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새하얀 얼굴에 맹수의 눈동자를 갖춘 금안이 시리도록 빛났다.

 

그 이름도 찬란한 검성의 귀환이었다.

 

 

 

 

 

에이미가 흰 수염 해적단이 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건 오랜만에 형제들 얼굴이나 볼까 해서 어두우르가나 섬을 떠나 배로 귀향하고 있을 시점이었다. 상시 가지고 다니던 전보벌레가 시끄럽게 울어대서 받았더니 보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아카이누를 비롯한 중요 해군 병력들이 흰 수염 해적단의 2번대를 습격하고 있다고 알리는 것이 아닌가! 한적한 마을에 정말로 사탕가게를 차려버린 보이와 씨씨는 그 간의 경험을 십 분 활용하여 부업으로 정보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정보가 꽤나 정확해서 도움 받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다행히 거의 흰 수염 해적단에 가까워졌을 때쯤이라 친구들에게 감사인사를 남기고 급하게 배를 몰았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목격한 것은, 전투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버린 2번대의 배와 아카이누가 너덜너덜한 에이스에게 마그마를 날리는 장면이었다. 미친, 안 돼! 내가 정상결전에서 저 장면을 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나의 최애캐를 이렇게 또 잃을 수는 없어! 우리 에이스 쨩에게 손 떼라, 빨간 멍멍아!

 

눈이 뒤집혀서 앞뒤 안 가리고 나섰다. 철컥. 검에 손을 올리자 무장색 패기를 짙게 두른 히호시가 기쁘다는 듯이 울었다. 그 울음은 오롯이 아카이누의 공격을 반격하는데 쓰였다.

 

평생을 다 바쳐 스물한 살을 맞게 해줬더니 이제는 스물다섯이에요?”

 

에이미!”

 

에이스가 환하게 웃었다. 어이쿠, 전투 중인데 넋을 놓을 뻔했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웃음이야! 감탄과 더불어 나오려는 코피를 겨우 참았다.

 

, 해군에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것도 이제 끝이구나, 흑흑! 선량한 민간인의 삶이여 안녕. 그래도 에이스 쨩의 스물다섯을 지켰으니까 행복해!

 

그러나 지금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카이누. 그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감상을 만끽할 여유 따위는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검성에이미? 역시나 그 더러운 숨을 잘도 이어붙이고 있었군.”

 

죽은 줄 알았던 자의 귀환인데도 아카이누는 아주 잠깐 놀란 기색을 드러냈을 뿐 다시 으르렁거렸다. 오른팔이 없어진 그의 소매가 바람에 나부꼈다. 에이미는 그를 흘끗 쳐다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 쪽이야말로 내 소중한 형제들을 공격하다니. 다른 왼팔도 없어지고 싶었나봐?”

 

그렇다면 유감이야. 에이미가 온 몸을 뒤집어쓴 로브를 벗어 던졌다. 드러나는 검성의 건재함에 한 차례 술렁임이 일었다. 에이미는 패기를 두른 히호시를 아카이누에게 겨누었다. 에이미가 등장한 것만으로 이미 전세는 달라졌다. 부상을 입은 형제들은 빠져나가 전선을 재정비했고 정상결전에서 이미 검성의 두려움을 맛본 해군들은 몸을 떨었다.

 

온 몸이 너덜너덜하더니 잘도 살아있었군. 그 동안 쥐새끼처럼 숨어서 치료라도 받았나보지? 그렇다면 실력이 꽤나 죽었겠어.”

 

아카이누가 도발했으나 거기에 넘어갈 에이미가 아니었다. 에이미는 스스로의 실력을 잘 알았다. 실력은 일취월장했으면 했지 결코 죽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원래 세계로 돌아가느라 2년 동안의 공백이 있긴 했지만, 다시 이 세계에 정착한 뒤로 똑같이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2년을 미호크와 함께 살고 있는 에이미는 흰 수염 해적단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검을 휘둘렀다.

 

이유는 딱히 거창하지 않았다. 건강해진 것까지는 좋았지만 두 배가 되어버린 통각 때문에 한동안 고심하던 에이미가 더 강해져서 상처 따위는 입지 않으면 되지!’ 라며 트립퍼 특유의 패기를 부렸을 뿐이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할 무력을 키워두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원작에 관여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에이미는 여전히 흰 수염 해적단이 소중했고 그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건강해져 시간제약 없이 미호크와 검을 겨룰 수 있다는 점도 톡톡히 작용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었으나 서로가 서로의 검에 취하면서 수백 번의 대결로 이어져 틈만 나면 검을 겨루었다. , 그 대가로 소박한 농사꾼의 꿈은 엉망으로 끝났지만 어차피 에이미는 농사가 영 적성에 맞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에이미는 이제 미호크의 그림자를 밟고도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실력이 죽었다니 그런 섭섭한 말씀을~ 혹시 궁금하다면 직접 시험해도 좋아.”

 

왼팔이 먼저 날아가는 게 누구인지 말야. 상냥하게 웃으며 기꺼이 도발을 맞받아치자 그렇지 않아도 찌푸려진 아카이누의 미간은 불쾌함으로 얼룩진 주름이 덕지덕지 붙었다.

 

이번에야말로 저승길로 보내주지!”

 

거대한 마그마가 불타올랐다. 패기를 덧입힌 공격이었다. 그러나 에이미는 히호시를 기묘한 각도로 틀어올려 공격을 쳐냈다. 이미 아카이누의 공격을 막아본 에이미는 상대와 저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에이미였다. 그러나 에이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카이누가 노린 것이 에이스를 비롯해 부상당한 동료들이라는 점이었다.

 

현재 흰 수염 해적단의 본선은 물자 조달을 위해 다른 곳에 정박해있었다. , 현재 타고 있는 배는 임무가 있어 잠시 본선을 이탈한 배로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긴 본선이었다면 아무리 아카이누라고 할지라도 이리 쉽게 습격할 생각은 못했겠지. 아마 이탈한 틈을 타 에이스를 노리고 온 모양이었다.

 

끝내 죽이지 못한, 해적왕의 자식을 죽이기 위해.

 

해적왕의 자식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개인적인 원한도 접어둔다는 건가? 하여튼 방심할 수 없는 놈이야. 에이미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아카이누에게 거대한 참격을 날리고 뒤를 돌았다. 어둠어둠 열매로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끌어당기고 닥치는 대로 베어 넘겼다.

 

그러나 이미 아카이누의 손을 떠난 공격만큼은 막지 못했다. 부상을 당해 주위에 있는 다른 2번대 사람들을 보호하는데 급급한 에이스를 보며, 에이미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미처 처내지 못한 작은 마그마 파편이 왼쪽 눈에 직격했다.

 

허억.....!!!”

 

에이미!!!!”

 

아카이누 너 이 자식!!!”

 

형제들의 고함소리도 이 순간만큼은 에이미에게 들리지 않았다. 온 혈관을 파고드는 감각은 선연한 고통뿐이었다. 뜨거워뜨거워뜨거워뜨거워! 처음으로 맛보는 작열통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지나치게 고통스러우면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피부 표면을 그을리고, 눈꺼풀을 태우고, 그 안에 있는 안구마저 불살랐다. 어둠어둠 열매의 능력으로 간신히 진행속도를 멈췄으나 그럼에도 살이 타오르는 냄새가 지척에서 맡아졌다. 괴리감이 느껴졌다. 타고 있는 게, 내 살인가? 사실 타고 있는 건 내 뇌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녹아버릴 것 같은 감각이 선연하게 느껴질 리가.

 

, 이래서 아픈 건 싫은데.

 

에이미는 웃었다.

 

타버린 건 뇌가 아니라 굳건히 부여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었다.

 

도발할 생각이라면 성공했네요.”

 

설마 내 잘생긴 얼굴에 흉을 남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이건 전세계 인류의 손실인데! 이런, 그러고 보니 화상흉터잖아? 화상흉터는 그렇게 잘 지워지지도 않던데~ 덕분에 평생 안대만 차고 다니게 생겼어? ?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소름끼치게 웃던 에이미는 이내 웃음을 멈췄다.

 

그럼 그 보답으로 작은 선물을 하나 드릴게요.”

 

에이미는 아주 작은,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분명하게 말했다.

 

“‘벚꽃공주를 죽인 건, 바로 나야.”

 

당신들 눈앞에 있는 이 칼로 그 잘나신 몸을 베어 드렸지.

 

어떤 말을 들어도 무덤덤하리라고 생각했던 아카이누의 눈이 커졌다. 이내 그 눈은 짙게 물들었다. 증오와 혐오를 비롯해 미처 읽어내지 못한 수많은 감정들이 두 눈동자 안에 얼룩진다.

 

이제는 당신을 막아줄 충성스러운 부하도 없는데 몸을 좀 사리는 게 어떨까?”

 

안 그러면 상관 잘못 만난 죄로 애꿎은 부하가 또 죽을지도 모르잖아, ? 마지막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카이누의 몸에서 다시 거센 화염이 타올랐다. 신경을 타고 뇌를 녹여버릴 것만 같은 열기가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