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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삼총] Long time no see

츠쿠리 2018. 2. 21. 15:32






[우삼총] Long time no see

W.B - 츠쿠리









01

 

돌이켜보자면, 이것은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한 때의 꿈같은 이야기이다.

 

  


02

 

모비딕에 정착한지 일 년, 그러니까 에이미가 열한 살쯤 되었을까. 그날도 어김없이 엑스트라 해적단이 공격을 가해왔다. 다만 습격해오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일제히 달려들던 다른 해적단과는 달리, 선장이라는 놈이 달랑 바주카포 하나를 꺼내들고 당당히 외치는 것이 아닌가.

 

푸하하! 오늘이야말로 흰 수염 해적단, 네 놈들의 제삿날이다! 10년 후의 더 강해진 내가 네놈들을 상대할 테니 말이다! 10년 후의 나라면 흰 수염 해적단쯤은 아무 것도 아냐!”

 

바주카포 하나 꺼내들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간을 배 밖으로 내놓은듯한 그의 선언에 전투를 준비하던 흰 수염 해적단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침입자들을 바라보았다. 선장이란 녀석, 미친 거 아냐? 조심해,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고도의 술수일지도 몰라. 그러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단 한 명만큼은 저 바주카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헐 미친. 저거 가x리에 나오는 10년 바주카포 아냐?!’

 

그렇다. 해적단에 어울리지 않게 홀로 훤칠한 전투원들 사이에 끼어있는 작은 남자아이. 그러나 정체는 모비딕으로 트립한 () 여고생 에이미다. 전생에 원피스 말고도 꽤 다양한 만화를 봤던 에이미는 모 소년 만화의 트레이드 마크인 10년 바주카포 정도는 바삭하게 꿰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알아챈 것까지는 좋은데 도대체 왜 저게 여기 있지? 아무리 봐도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것 같은뎁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엑스트라가 10년 버프를 받았다고 해서 얼마나 강해지겠어.’

 

무례한 생각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루피나 다른 메인 캐릭터들이야 2년 버프만으로 충분히 강해지지만 아무리 봐도 엑스트라인 저 사람은 가망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에이미가 한가롭게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상황을 관망하던 마르코가 순식간에 불사조로 변해 선장의 손에 발차기를 날렸다. 선장이 막 자신에게 10년 바주카포를 쏘려던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체를 모르니만큼 함부로 쓰게 만들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앞섰으리라. 문제는 손에 발차기를 날리면서 바주카포가 허공으로 높이 날아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주카포의 예상 착지 지점은 다름 아닌 에이미였다!

 

, 에이미!”

 

피해!!!”

 

?”

 

!!!

 

뒤늦게야 상황을 눈치 챈 형제들이 부랴부랴 달려왔으나 바주카포은 이미 에이미에게 직격한 후였다. 엄청난 연기가 갑판을 뒤덮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연기에 당황스러워 하던 것도 잠시, 마르코가 날개를 퍼덕거려 재빨리 연기를 걷어냈다. 그러나 막상 연기가 거두어진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연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은 온데간데없고 바주카포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뭐야, 에이미는 어디로 간 거야?”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여기에 있었는데?”

 

우리 귀여운 막내 어디 갔어! 모여 있던 형제들이 갑판을 샅샅이 뒤졌으나 에이미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아이의 선실도 가보았으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분위기가 흉흉해진 흰 수염 해적단원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딸꾹!”

 

아까의 당당함은 어디로 팔아치웠는지 새하얗게 질린 엑스트라 해적단의 선장이 살기에 질려 공포에 떨고 있었다.

 

 

 


03

 

한편, 에이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익숙한 갑판 위에 서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에 놓여있던 것이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리둥절했겠지만 전생이란 치트키를 가지고 있는 에이미는 이곳이 10년 후의 세계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미친,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10년 바주카포였어? 트립신은 대체 뭘 했기에 타 장르의 시그니쳐 아이템이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둔 거야?

 

투덜거림도 잠시, 에이미는 5분이라는 짧은 지속시간동안 무얼 할까 고심했다. 10년 후의 나라면 스물한 살인가? 용케도 모비딕에 남아 있었구나. 에이스 쨩은 만났으려나? 아니 그보다 에이스 쨩 살리기 대 작전은 어떻게 된 거지? 으으, 10년 후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이거 인생 강제 스포일러잖아! 그렇게 갑판에 털썩 주저앉아 골몰하고 있는 에이미의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미?”

 

어쩐지 울음이 섞인 목소리다. 고개를 들어보니 익숙한, 그러나 제 기억보다는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삿치 대장님?”

 

늘 주어진 양을 못 먹는 제게 살갑게 간식을 쥐어주곤 하는 삿치의 모습에 에이미는 화색을 띄우며 일어섰다. 원래 죽었어야할 삿치가 살아 있다는 건 10년 후의 내가 뭘 바꿨다는 말이겠지? 그렇다면 에이스가 살아있을 확률도 덩달아 높아진다! 기뻐서 희희낙락하던 것도 잠시, 눈에 들어온 삿치의 얼굴은 울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우왓! 삿치 대장님, 왜 울어요? 무슨 일 있어요?”

 

, 에이미...정말...정말 너 맞아....?”

 

내가 에이미지 그럼 누구겠어요.”

 

일부러 그의 울음을 멈추기 위해 활짝 웃어보였는데 그럴수록 그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니 이러면 내가 울린 거 같잖아! 무슨 일인데 그래?

 

무슨 일이야, 삿치?”


삿치의 울음소리를 들은 건지 조용하던 갑판에 하나 둘씩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으아, 이거 일이 커지는데! 갑자기 쏠린 시선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안절부절 못하던 에이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그러니까, 제가 울리고 싶어서 울린 게 아니고...그냥 삿치 대장님이 절 보자마자 울었어요! 진짜에요! 전 아무 것도 안 했는데...”

 

“..........”

 

어라? 어쩐지 조용하지 않아? 시끌벅적한 흰 수염 해적단은 어디로 갔담? 조용한 반응에 의아해진 에이미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힐끗, 하고 모여든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겼을 때는 이미.....

 

“?! 아니 다들 왜 울어요?!”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일제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단체로 눈병이라도 걸렸나! 대체 왜 이런데?!

 

, 에이미다!”

 

진짜, 진짜 에이미 맞아? 흐어어엉!! 에이미!!!!”

 

저를 덥석 끌어안고 울어대는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들에, 에이미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이유라도 좀 알자구요!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나 형제의 일이라면 누구보다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모비딕 사람들은 우느라 정신이 없어 소년이 겪는 당혹스러움을 미처 헤아려줄 수 없었다.

 

 

 


04

 

갑자기 형제가 사라진 전대미문의 사건에 흰 수염 해적단은 말 그대로 엑스트라 해적단을 탈탈 털었다. 말로만 그랬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죽기 직전까지 탈탈 털었다는 말이다. 10년 후 바주카포가 없는 엑스트라 해적단은 흰 수염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얼마 가지 않아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항복을 선언했다.

 

그리하여 엑스트라 해적단이 털어놓은 10년 후 바주카포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그 바주카포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주운 물건이다. 둘째, 살상력은 없지만 맞은 사람이 누구든 현재의 자신과 10년 후의 자신을 5분 동안 맞바꿔서 불러올 수 있다. 셋째, 간혹 10년 후 바주카포를 맞았음에도 10년 후의 자신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십중팔구....

 

죽었다는 말이야? 10년 후의 에이미가?”

 

줄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앞서 들은 설명으로 대충 내막을 짐작하고 있던 마르코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에이미의 몸 상태는 1년을 넘긴 것조차 신기한 상태였어. 10년 후의 에이미가 죽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지....”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조우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이 배의 선의로서, 끝내 아픈 형제를 고쳐줄 수 없었다는 사실이 못내 쓰라렸다.

 

어쨌든, 에이미가 다시 돌아온다면 이 사실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 그렇게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가득한 아이인데 10년 후의 자신이 죽었다는 걸 알면 상처받을 지도 모르니.”

 

이조우 말이 맞아요이. 오히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지요이. 에이미가 10년 후에도 죽지 않게 노력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지요이.”

 

마르코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선언하다시피 말했다.


미래란 것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니까요이.”


과연 1번대 대장답게 결코 형제를 헛되이 죽게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엿보였다. 


 


 

05

 

꺼이꺼이 우는 형제들 앞에 한 소년이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그렇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10년 후의 세계로 날아간 () 여고생 에이미다. 에이미는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고 하면 통곡을 하다시피 울어대는 형제들에 질려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사실, 이렇게 울어대는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 죽었나?’

 

아니면 실종이거나. 에이미는 애써 덤덤하게 생각했다. 사실 이렇게 울어대는 형제들을 보면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슬슬 제한시간인 5분이 가까워지지 않았나? 5분 동안 얻게 되는 스포일러가 최소 실종 아니면 사망이라니 스펙타클한 걸. 원피스 세계에서 엄청난 모험을 했구나, 10년 후의 나.

 

.’

 

슬슬 시간이 다 된 모양인지 몸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엉엉 울던 형제들이 화들짝 놀라 다급한 표정으로 저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으음, 그렇게 잡아봤자 소용없을 텐데.

 

그 때였다.

 

에이미라고요이?”

 

거짓말 하는 거면 네놈들, 총으로 갈겨 주마!”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한 발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사람은 10년 전에도 항상 제 곁에 있어주었던 마르코와 이조우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어 누군가 걸어 나왔다. 주근깨로 가득한, 그러나 에이미가 기억하는 것보다 좀 더 듬직하고 어른스러워진 얼굴이다. 그토록 행복하기를 바랐던, 늘 종이로만 접했던 사람이 그 곳에 있었다.

 

에이미!”

 

에이스가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 정말 에이스야? 실물 에이스가 내 앞에 있다고?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에이스가 여기 있다는 건, 정상 결전에서 살아남았다는 소리잖아!

 

에이미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였다. 모비딕 형제들이 늘 좋아해주었던, 햇살 같은 미소였다.

 

그리고 그 순간, 강한 기시감이 에이미를 끌어당겼다. 에이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제 그는 현재의 시간인,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에이스의 손이 강하게 제 어깨를 그러쥐는 순간, 거대한 연기가 에이미를 감싸 안았다. 연기 너머로 일그러지는 형제들의 표정이 눈에 밟힌다.

 

기억해, 에이미! 우리는 너를 사랑했어!”

 

에이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다른 형제들도 마치 바통을 이어받듯이, 앞 다투어 말하기 시작했다. 기억해줘, 너를 사랑했음을! 너가 우리를 사랑했듯이, 우리도 너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일그러져가는 시간 속에서 그 무엇보다 달콤한 고백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에이미는 눈을 감았다.

 

 

 


06

 

눈을 뜨니 어딘가 익숙한 장소였다. , 그렇다고 해서 모비딕이란 소리는 아니다. 모비딕으로 오기 전 경험했던 새하얀 장소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잊고 싶어도 그리 쉽게 잊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니 말이지. 눈앞에 머리만 동동 떠다니는 트립신도 있고.

 

안녕! 오랜만이지 냥?”

 

역시 당신 짓이었구나, 트립신!”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 비장하게 범인은 당신이다! 라는 대사를 외치니 트립신이 어쩐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이거 미안하게 됐다냥. 실수로 그 세계에 존재하지 말았어야할 물건이 넘어가버렸는데 영 찾기가 곤란했지냥. 다행히 트립퍼인 네가 맞아준 덕분에 물건을 수월하게 회수할 수 있었다냥.”

 

정말이지, 조심 좀 하라고. 맞은 게 나라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

 

에이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말이다냥. 그래서 말인데, 10년 바주카포는 원래 그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냥. 아마 네가 모비딕으로 다시 돌아가는 순간, 10년 바주카포로 겪은 기억은 모두 사라져버릴 거다냥. 그럼에도 너를 여기에 부른 건 본의 아니게 인생 스포일러를 미리 겪게 된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부른 거다냥.”

 

, 정말? 그런 거라면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에이미가 웃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에이스도 살았고 나도 꽤 사랑받았던 거 같으니 말이지. 10년 바주카포로 불행한 일을 겪었다면 한 대 때려주려고 했는데 그게 아니니까 괜찮아.”

 

“...그 행복했던 기억이 지워지는데도 말이지냥?”

 

, 그러게. 하지만 괜찮아. 기억이 지워져도, 나를 사랑했다고 말해줬으니까. 그 사실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했어.”

 

“...그런가. 다행이네.”

 

어라? 방금 트립신 너, 끝에 냥 안 붙이지 않았어? 그러나 에이미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트립신의 휘어지는 눈꼬리를 마지막으로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지며 발이 쑥 꺼졌다. 지독한 수마가 의식을 잠식했다.

 

 

 

07

 

어라, 나 잠들어버렸나? 얼굴에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에 에이미는 끔뻑거리며 잠긴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평화로운 모비딕의 갑판. 앉아서 잠깐 쉰다는 게 그만 낮잠이 들어버린 모양이다.

 

"일어났어?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네.”

 

갑판을 지나가던 네네가 눈곱이 잔뜩 묻어있는 에이미를 보고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거친 손이 에이미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듯이 쓰다듬었다.

 

그런가요? 어쩐지 행복한 꿈을 꾼 것 같아서요.”

 

에이미가 햇살처럼 웃었다.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살랑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쩐지 지독히 그립고도 행복한 내음이 묻어났다.

 




08


이렇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한 장의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러나 아직은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미래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렇다. 돌이켜보자면이것은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한 때의 꿈같은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