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스일/아이스파] Love Revolution

W.B - 츠쿠리









네가 좋아, 스팬담.”

 

묵묵히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 차를 홀짝이던 아이스버그가 뜬금없이 고백을 해왔다. 이 새끼 아침부터 술 마셨나? 술 좀 작작 처마시지 낯부끄러운 소리나 하고.

 

응 그래 고마워.”

 

이게 무슨 뜻이더라. 터포키가 없어 자체적으로 서류를 처리하자니 골치가 아팠다. 시발 사전을 찾아보려니 사전에 나와 있는 설명도 영어잖아. 좆같네. 서류를 설렁설렁 넘기며 건성으로 대답하니 아이스버그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뭐야, 대답 대충해서 빈정 상했냐?

 

내가 무슨 뜻으로 좋아한다고 말했는지 알기나 해?”

 

...”

 

아니 딱히 생각해본 적 없었다. 평소에 실없는 소리를 워낙 많이 흘리니까 그 일환이겠거니 했지. 내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자 아이스버그가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말했다.

 

널 사랑해.”

 

?

 

우정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네가 좋아.”

 

Like의 의미로 좋아한다가 아니라 Love라는 의미로 좋아한다고, 내 하나뿐인 친구가 그리 말했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이제는 하나뿐인 친구도 잃게 생겼구나.

 

좆같은 스팬담. 불행한 일이 생기면 일단 욕부터 하고 보는 게 버릇이 됐다. 무슨 죄로 인생이 이렇게 박복해서 애꿎은 나도 좆같게 만드냐.

 

사실 아이스버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애시당초에 자기랑 친구하자고 말했을 때부터 이해할 수 없는 놈이긴 했다. 대체 스팬담에게 좋아할만한 부분이 어디 있지? 나는 스팬담에 대한 사실을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이름 스팬담. 나이 서른아홉에 애인 하나 없이 사법섬에 틀어박혀 서류결제나 하는 신세다. 몸이 약해서 진통제를 달고 다니고 오래 걸으면 다리가 아프며 찬바람을 맞으면 감기에 걸린다. 운동이라도 해볼까 결심하면 다음날 근육통 오지, 빼빼 마르고 비실비실하지, 에니에스 로비 장관이지만 권력 하나 없고 돈도 없고 지금은 아카이누 밑에서 따까리 신세고. 시발 말하다 보니 비참하다. 8년 동안 스팬담으로 용케 살았구나 싶다.

 

그에 비해 아이스버그는 앞날이 창창하다. 나이는 서른여덟이지만 물의 도시 워터세븐의 시장이자 갈레라 컴퍼니의 사장. 워터세븐의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아이스버그를 존경한다. 돈도 많고 신체 건강하고 성격 좋은데다가 유능하기까지. 뭐 하나 빠질 것이 없는데.

 

그런데 대체 왜.

 

몰려오는 두통에 머리를 쥐어 싸맸다. 앞을 보니 아이스버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발, 진통제 먹고 싶다.

 

“...난 몸이 안 좋아.”

 

알아.”

 

잘 생기지도 않았어.”

 

내 눈에는 귀여운데?”

 

난 돈도 없어.”

 

괜찮아 내가 돈이 많으니까.”

 

난 에니에스 로비의 장관이지만, 권력 하나 없어. 오로성이든 아카이누든 지랄하면 납작 엎드려야 해.”

 

엄머, 같이 엎드려줄까?”

 

난 너한테 해서는 안 될 짓을 했고 영영 용서 받을 수 없어. 필요하다면, 언제 같은 짓을 할지 모른다고.”

 

안 그럴 거 알아, 스팬담.”

 

“...도대체 나의 뭘 믿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야?”

 

본심이 툭 튀어나왔다. 뭘 말해도 내가 좋다고 말하는 녀석을 이해할 수 없어서 화가 치솟았다. 그도 그렇잖아. 왜 스팬담을 좋아하는 건데? 어떻게…, 스팬담을 좋아할 수가 있는 건데?

 

나에게는, 나를 싫어하지 않을 이유가 수만 가지쯤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막막한 현실이 나를 덮치고 목을 졸랐다. 좆같은 스팬담. 혐오스런 스팬담. 매일 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몰아붙이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야, 스팬담인걸.

 

내가, 바로 그 좆같고 혐오스러운 스팬담인걸.

 

거울을 보면 내가 스팬담이라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어서 차라리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에버랜드 따위는 못가도 좋으니까, 눈을 뜨면 그냥 수능 끝나고 차에 치인 그 상태 그대로였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나는, 너를 좋아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수만 가지쯤 댈 수 있다.

 

그런데 너는 내게 말한다.

 

스팬담. 좋아하는 것에 이유는 딱히 필요 없어.”

 

그만.

 

그야 처음에는 이유를 찾아보지. 왜 자꾸 시선이 갈까, 왜 자꾸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을까, 왜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싶을까.”

 

하지마.

 

그러다 그냥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눈치 채는 거야. 어떤 이유를 붙이든, 네가 좋다고.”


제발 말하지 마.

 

널 사랑해, 스팬담.”

 

차마 아이스버그를 마주볼 수가 없어서 눈을 감았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수만 가지쯤 댈 수 있다.

 

나는 스팬담이다. 좆같은, 거지같은, 시발 혐오스런 스팬담이라고.


그러니 제발 날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

 

내가 날 싫어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주지 마.

 

영영 눈을 감고 싶었다. 아니면 눈을 감았다가 뜨면 하늘이 보였으면 좋겠다. 수능 끝나고 차에 치여서, 벌러덩 넘어진 채로, 쪽팔려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늘이나 바라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눈을 떠, 스팬담.”

 

하지만 현실은 발목을 잡는 새까만 어둠이었다.

 

눈을 뜨고 나를 봐. 그리고 인정해.”

 

그 현실에서도, 아이스버그는 끝까지 잔인했다.

 

내가 널 사랑한다는 사실을.”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