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AU






[우삼총/미호에이] Kill me Heal me

W.B - 츠쿠리








동이 튼다. 남자는 바다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수평의 경계에서 모습을 드러낸 태양은 마침내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고 눈부신 햇살을 비추었다. 남자는 태양의 중심에서 너울거리는 아침을 맞이했다. 호사가들은 이 세상에 인간만큼 대단한 존재는 없다고 떠벌리고 다닌다지만 그건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하루의 아침이 시작되는 장엄함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인간은 자연 앞에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물론 죽어라고 틀어박혀 아침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긴 하군. 아니 이 경우에는 인간에 속하지 않으니 예외라고 할 수 있을까. 남자는 섬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낡은 고성을 떠올렸다. 울창한 침엽수에 둘러싸여 한낮에도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성은 음침하기 짝이 없었다. 정작 성의 주인은 꽤나 밝고 태평한 축에 속하는데 말이다. 지금쯤 이불 속에 파묻혀 뒹굴고 있을 청년을 떠올리자 남자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예나 지금이나 그 자의 행동은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다.

 

이봐…쿨럭…! 설마 흡혈귀가 아니었나…?”

 

발밑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남자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몇 구의 시체들 사이로 깊게 베인 상처를 움켜 쥔 사냥꾼이 입 안에 고인 피를 토해냈다. 치명상을 입었는데도 죽지 않은 것인가. 남자는 혀를 찼다.

 

대답해라너는인간인가…?”

 

인간이다.”

 

침입자에게 친절하게 대답해줄 이유는 없다. 평소 같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명줄을 끊었을 테지만 남자는 변덕을 부려 일말의 자비를 베풀기로 결심했다. 치명상을 입고도 정신을 유지하다니 보통 기개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모처럼 닫혀있던 말문을 틔었건만 사냥꾼은 오히려 황망한 얼굴로 망연하게 중얼거릴 따름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창백한 피부부리부리한 눈매…! 분명 이 섬에 산다고 알려진 흡혈귀의 특징이거늘….


그런가. 그리 알려졌는가.”

 

안타깝군. 무덤덤한 목소리로 표하는 애도에 사냥꾼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성수도, 십자가도 통하지 않기에 이 무슨 괴물인가 싶었거늘…인간이니 그러한 게 당연하지… 인간이니 당연해…. 흡혈귀가 산다는 말이 거짓인지도 모르고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무례한 사람들이 되어버렸군…. 미안하네….

 

남자는 모자를 깊게 눌러 썼다. 동료를 죽인 사람을 앞에 두고도 사과를 건네는가. 눈앞의 사냥꾼은 꽤 강직한 성품을 가진 인간인 모양이다. 동료와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사람이라, 적어도 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남자는 일말의 아쉬움을 삼키기 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것을 택했다.


딱히 사과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당신의 기개를 높이 사 몇 가지 도움 될 만한 조언을 해주지.”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말인가…? 차라리 응급처치라도 해줘서 살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것이 어떤가…?”

 

그러나 남자는 사냥꾼의 말을 들은 체도 않고 묵묵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첫째. 이 섬에 흡혈귀는 실제로 존재한다. 다만 알려진 바와 다르게 생겼을 뿐이다. 둘째, 흡혈귀의 생김새에 대해 착각하도록 거짓을 퍼뜨린 사람은 바로 나다. 그리고 셋째,”

 

……….

 

내 이름은 쥬라클 미호크.”

 

………!

 

남자의 말에 사냥꾼은 눈을 크게 떴다. 쥬라클 미호크. 그 자는 흡혈귀 사냥꾼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지 않은가.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십 여 년 전, 홀연히 모습을 감추고 사라진 전설적인 흡혈귀 사냥꾼이니 말이다.

 

당신이 바로 쥬라클 미호크! 어째서 당신 같은 자가…인간을 배신하고…흡혈귀의 편에 섰단 말인가…!”

 

진실을 알게 된 사냥꾼의 눈에 분노가 일렁였다. 거친 숨소리는 비단 상처에 의한 것만이 아닐 터다. 그제야 모든 의문이 한 곳으로 맞춰진다. 망망대해에 있는 자그마한 섬에 흡혈귀가 산다던 출처모를 소문,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진 흡혈귀의 생김새 그리고 눈앞의 남자, 쥬라클 미호크. 이 모든 것은 태풍의 눈에 자리하고 있을 섬의 주인을 비호하기 위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사냥꾼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남자, 아니 쥬라클 미호크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사냥꾼을 바라보았다. 동료를 잃은 슬픔으로 일렁이는 눈빛은 더 이상 아까 전에 잘못을 시인하던 자와 같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러니 내가 말했잖은가. 안타깝다고.”

 

물론 진실을 안다고 한들 전할 수는 없겠지만. 미호크는 손에 움켜쥐고 있던 거대한 흑도를 들어올렸다. 날에 반사된 햇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미약하게나마 숨을 이어가고 있던 마지막 생명이 끊어졌다.

 

눈부신 아침이 내리쬐는 광경은 피로 흠뻑 적셔진 대지다. 미호크는 그것을 무덤덤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홀연히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붉은 액체가 찰랑거리는 자그마한 병이 들려 있었다.

 

 

 

 

 


 ◈  ◈  ◈

 

 

 




미호크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섬의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낡은 고성이었다. 음침한 외양과는 달리 내부는 주인의 성격을 보여주듯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유리창, 벽에 비치된 고풍스러운 초상화, 낡은 복도를 밝히는 환한 촛불. 곳곳에 걸려있는 암막 커튼만 아니라면 특이한 점을 찾아볼 수 없는 성이었다.

 

미호크는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랐다. 수없이 많은 방을 지나친 그가 마침내 다다른 곳은 성의 꼭대기 층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문이었다. 똑똑. 프라이버시 타령을 하는 주인의 성격을 고려해 노크를 하기는 했으나 지난 세월 겪었던 무수한 경험으로 대답이 들려올 리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한 미호크는 노크와 동시에 방문을 열어젖혔다. 과연, 그의 짐작대로 하늘거리는 캐노피가 펼쳐진 침대에는 이불 속에 몸을 파묻은 새하얀 청년이 늘어지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깨워봐야 소용이 없겠군. 빠른 판단을 마친 미호크는 망설임 없이 이불을 홱 잡아당겼다. 이불 속에 파묻혀 잠을 만끽하고 있던 청년은 갑자기 닥친 날벼락에 꽥! 하고 비명을 질렀다. 미호크는 청년의 손에 자신이 들고 있던 유리병을 쥐어주었다.

 

아침 먹을 시간이다. 에이미.”

 

아침 먹을 시간 같은 소리하네. 미호크에게는 아침이지만 저한테는 밤이거든요!”

 

흐어엉! 나 좀 자게 내버려 둬요! 청년, 에이미는 베개로 얼굴을 들이밀며 앓는 소리를 냈다. 덕분에 가뜩이나 부스스하던 연보랏빛 머리가 더욱 헝클어졌다. 그러나 미호크는 대답하는 대신 매서운 눈으로 에이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진짜! 왜 이렇게 나쁜 아이로 자란 거예요? 나는 미호크를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딱히 가르침을 받은 기억은 없다만.”

 

칭얼거림에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던 미호크는 에이미가 슬금슬금 유리병을 내려놓으려고 하자 품속에 자리하고 있던 또 다른 병을 꺼내들었다. 병 안에는 물처럼 보이는 투명한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에이미는 그게 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은은한 빛을 머금고 있는 액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성수였다. 가뜩이나 핏기 없던 에이미의 얼굴이 더더욱 창백해졌다. 미호크의 행동은 명백한 협박이었다. 당장 이걸 먹지 않으면 성수를 뿌려 죽기 직전의 고통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친절한 의도에 몸서리가 절로 쳐졌다.

 

그러나 에이미는 꿋꿋이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식사는 됐어요. 평소대로 오렌지 주스나 먹을래.”

 

모처럼 들어온 신선한 피다. 지금 먹지 않으면 더 고통스러워질 텐데.”

 

그걸 먹는 게 더 고통스럽다는 걸 알면서 억지로 먹이는 이유가 뭐예요? 난 분명 미호크를 상냥하게 키웠는데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자라버린거냐구.”

 

이유는 늘 말했지 않나. 네가 살기를 바란다고.”

 

이런 거 안 먹어도 어차피 나는 안 죽어요.”

 

에이미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통의 흡혈귀라면 주기적으로 피를 섭취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가 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불사의 저주가 걸린 에이미는 여타 다른 흡혈귀와는 달리 스스로생을 끊을 수 없다. 그 범주는 생각보다 광활해서, 흡혈을 하지 않는 것조차 자의라고 판단해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끔 한다. 하지만 종족의 본능을 거스른 만큼 대가 또한 가혹하여 온 몸이 재가 되어 바스러지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불사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타의에 의한 것뿐. 예컨대 흡혈귀 사냥꾼이 숨통을 끊어 생의 고통에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그래, 오직 그것뿐인데.


에이미는 흐려진 금안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흡혈귀 사냥꾼은 저를 죽일 의도가 눈곱만큼도 없는 듯하다.


저기, 이제 그만 슬슬 나 좀 죽여주지 않을래요?”

 

거절한다.”

 

, 역시 미호크도 갑자기 혼자가 되어버리는 건 조금 쓸쓸하죠? 그럼 혹시 죽기 직전에라도 나를 죽일 생각은...”

 

없다.”

 

…그렇군요.”

 

일말의 재고조차 없는 단호한 거절에 에이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다른 흡혈귀 사냥꾼은 못 죽여서 안달이던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있죠, 미호크. 난 정말로 외로운 게 싫거든요.”

 

……….”

 

아픈 것도 정말 싫어. 태양 앞으로 나가면 온 몸이 불더미 속에 던져진 기분이에요. 차라리 죽기라도 하면 아픈 것쯤이야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

 

그러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미호크가 나를 죽여야 한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구요. 미호크 실력이야 잘 아니까 그간의 정을 봐서라도 아프지 않게 단칼에 죽여줘요. ?”

 

묵묵히 듣고만 있던 미호크가 입을 열었다.

 

차라리 나를 흡혈귀로 만들면 되지 않나.”

 

에이미가 코웃음을 쳤다.

 

이미 흡혈귀처럼 생긴 사람을 흡혈귀로 만들어서 뭘 하라구요.”

 

네 외로움 정도는 덜어줄 수 있겠지.”

 

내 외로움 하나 덜자고 멀쩡한 인간을 흡혈귀로 만들라구요? 싫어, 난 그렇게는 못해.”

 

단호히 거절하는 에이미의 눈에 스민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독한 혐오였다. 감정의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던 질척함은 찰나의 순간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졌으나 생글거리며 나른하게 웃던 얼굴 대신 지독한 증오가 자리 잡았다.

 

애초에 내가 죽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뭔데요.”

 

에이미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흡혈귀라는 건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악귀에 불과해요. 인간의 음식은 입에 대지 못하고 마실 것만 간신히 맛을 느낄 수 있죠. 유일하게 식량으로 섭취할 수 있는 건 피인데 심지어 짐승의 피는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해서 인간의 피를 먹어야만 한다구요!”

 

……….

 

그것도 그냥 인간의 피에는 쾌감을 느끼지 못해요. 죽기 직전, 극한의 감정에 내몰린 인간의 피야말로 흡혈귀에게 가장 강대한 힘과 쾌락을 느끼게 만들죠. 혐오스럽지 않나요? 이런데도 흡혈귀가 되고 싶다구요?”

 

에이미가 흐느끼듯이 웃었다.

 

당신은 잘 알잖아요. 내가 얼마나 죽고 싶은지, 내가 얼마나 죽음을 갈망하는지 알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나를 좀 죽여줘요. 애초에 내가 당신을 데려다 키운 이유는 나를 죽이기 위함이었으니까!”

 

…불가하다.”


미호크는 눈을 감았다.

 

아주 오래 전, 죽음을 갈망하는 흡혈귀는 고아인 인간 아이를 데려다 길렀다. 죽고 싶다. 그러나 스스로는 죽지 못한다. 아픈 것도 싫다. 그러니 아프지 않게 나를 죽여 달라. 생전 처음 보는 고아에게 할 만한 부탁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흡혈귀는 피를 거부한 대가로 고통에 시달려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흡혈귀와 아이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흡혈귀는 빈말로도 좋은 부모나 형제는 아니었다. 늘 헤실거리며 실없이 웃었으며 머리는 꽃밭에 가 있었다. 보호자라기보다는 겉모습이 가진 나이에 가까운 쾌활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좋은 친구이자 형제였으며, 가족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흡혈귀에게서는 사랑받고 자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햇살 같은 안온함이 있었다. 그는 사랑받고, 사랑받아, 사랑을 주는 법밖에 몰랐다. 차라리 아이에게 증오와 미움을 가르쳤다면 바라지 않아도 기꺼이 죽음으로 인도해줬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애정은 삭막했던 아이에게도 감정을 불어넣었다.

 

이윽고 아이의 상냥함은, 오로지 그를 상냥하다고 말한 단 한 사람을 위한 것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는 이 세상 모든 흡혈귀 사냥꾼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저를 길러준 단 한 명의 흡혈귀만큼은 죽일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는 간청한다.

 

부디 나를 위해 살아주면 안되겠나.”

 

…나는 이제까지 당신을 위해 살아왔어요.”

 

내 손에 죽기 위해 살아왔겠지.”

 

당신은 내가 조금 더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될지언정 그게 죽음을 갈망하는 것을 막을 이유는 되지 못해요.”

 

에이미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청년이 되었을 무렵, 흡혈귀는 아이를 인간 세상으로 내보냈다. 흡혈귀 사냥꾼이 되어 경험을 많이 쌓고 오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야 조금 더 저를 빠르고 아프지 않게 죽일 수 있을 테니까.

 

아이가 떠난 시간은 조금 외로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아이의 삶에 저라는 존재는 본디 없어야 했다. 어쩌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느닷없이 인생에 끼어든 흡혈귀라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무서웠을지도 모르지. 흡혈귀는 애써 태평하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다행히도 아이는 무사히 돌아왔다. 어느덧 청년에서 완연한 남자가 되어버린 아이는 어딜 봐도 훌륭한 흡혈귀 사냥꾼이었다. , 다행이다. 흡혈귀는 목전으로 성큼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에 미소 지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이의 손에 죽는다는 건 역시 조금 슬펐지만,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구 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더 기뻤다그렇기에 흡혈귀는 얌전히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세월이 조금 지났으니까 아프지 않은 인도적인 방법이 개발되었지 않을까, 따위의 나사빠진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정작 흡혈귀에게 주어진 것은 죽음이 아닌, 어떻게든 저를 살리려고 애쓰는 바보 같은 흡혈귀 사냥꾼이었다. 아니, 이제는 흡혈귀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인간 사냥꾼이 더 어울렸다. 망망대해에 있는 섬에 인간을 불러들여 피를 뽑아 흡혈귀에게 먹이다니. 어딜 보나 사악한 흡혈귀의 훌륭한 하수인이 아닌가.

 

그러나 흡혈귀를 사랑해버린 저 바보 같음을 감히 탓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무거운 사랑이 흡혈귀를 이승에 머물게 할 이유 또한 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미호크는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하는 무거운 고백 대신, 구태여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이다.

 

부디 살아다오.”

 

부디 죽여주세요.”

 

누군가의 대답이 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겹쳐지지 않을 수평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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