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토드/루케니]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W.B - 츠쿠리

 

 

 

 

 

 

 

 

 

"이제 만족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으나 죽음(Der Tod)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검은 레이스가 달린 상복을 입고 울부짖는 여인에게 향해있었다. 관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여인의 얼굴은 수척했고,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강을 이룰 것처럼 눈물을 떨구는 여인은 그 순간만큼은 인간들의 위에 서 있는 황후가 아닌 아들을 둔 어미였다. 그러나 여인은 분명 세월을 겪었으나 그 흔적을 피하는 것처럼 여전히 아름다웠다. 죽음은 마치 홀린 듯이 그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케니(Lucheni)는 그 모습을 보며 나지막히 혀를 찼다. 죽음이라는 존재가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이는 집착은 그야말로 집요하다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어차피 그가 무엇을 명하든 따라야 하는 것이 제 존재 의의지만 때때로 오만하게 군림하는 파멸의 왕께서 보이는 낯선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죽음이 탄생한 이후, 루케니는 죽음의 첫 번째 수족으로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봐왔다. 루케니는 결코 죽음과 동등해질 수 없었지만 그가 탄생한 이후부터 쭉 그의 곁를 머무른 결과, 적어도 단순한 수족 이상의 위치는 얻을 수 있었다. 그 오만한 죽음이 루케니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였다. 특이하게도 루케니는 다른 죽음의 천사들과는 달리 꽤나 독립적인 인격체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죽음의 천사들이 죽음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것에 비하면 어쩌면 루케니는 돌연변이에 가까웠다.

 

하지만 루케니는 그런 제 모습이 죽음의 첫번째 수족으로서 있기에 꽤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수족이라고 칭하기에 루케니와 죽음의 관계는 특이했다. 루케니는 그 특이한 관계가 마음에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히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었다. 저가 누구보다 죽음의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아서 실로 만족스러웠다. 허나 그 오랜 세월을 죽음의 곁에서 머무른 루케니조차 그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했음에도 끝끝내 보지 못한, 그리고 겪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사랑이란 감정을 그가 느끼다니. 세상 참 오래 살다보니 별 일을 다 겪는다 싶었다.

 

저 차갑고, 오만한 왕께서 한 여인을 잊지못해 애쓰는 모습은 뭐랄까, 꽤나 애달프고 가련했다. 그리고 루케니는 죽음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사랑을 하더라도 평소처럼 차갑고 무관심하게 했으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빙자한 인형극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제 주인이 고작 단 한 명의 인간 때문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 제게도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그녀의 앞에서만 무방비하게 드러내는 죽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루케니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인간 행세를 해가면서까지 그의 인형극을 도왔다. 인간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의 구미에 맞았다. 특히 그 아름다운 여인이 인형처럼 제 의도대로 움직일 때면 묘한 쾌감을 느꼈다. 게다가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느껴지는 통쾌함에 전율하며 미친 듯이 웃었다. 죽음이 그런 자신을 꽤나 미묘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웃긴 건 웃긴 거였다.    

 

뭐, 하지만 인형극도 이제 슬슬 끝이려나. 루케니는 인간 세상에서 가져온 시가를 입가에 대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인형극은 종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이 꽤나 아쉬우면서도 속이 시원했다. 빨리 이 인형극을 집어치우고 그 차갑고 무관심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했지만 그래봤자 폐막을 선언하는 것은 저가 아니었다. 루케니 또한 이 인형극을 조종하는 꼭두각시일 뿐이었으며 모든 것은 죽음의 뜻대로 이루어질 뿐이었다. 루케니가 시가를 거의 다 태우고 매케한 연기가 자욱할 때쯤에야 죽음은 루케니의 물음이 기억났다는 듯이 천천히 그러나 무심하게 답했다.

 

 

"내게 만족했냐고 물었나? 아직이다. 아직 멀었어."

 

"오, 나의 주인. 언제까지 해야 만족할 셈이야? 이제 모든 것이 당신 뜻대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어? 어라? 또 침묵인가. 또 한참 뒤에야 답할 셈인가 보오. 전지전능한 나의 신이여. 부디 모자란 저에게 답을 내려주시지요."

 

 

대답하면서도 여전히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죽음의 모습이 꽤나 우스워서 루케니는 이죽거리는 어투를 감출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비아냥거렸다. 그제야 죽음이 여인에게서 눈을 떼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루케니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순식간에 사랑을 하는 존재에서 오만하게 군림하는 죽음의 왕으로 바뀌었다.

 

 

"건방지군. 언제부터 네가 내 뜻에 토를 달았나?"

 

 

그래, 그래야 나의 왕답지. 루케니는 씨익 웃으며 과장되게 고개를 조아렸다.

 

 

"용서하시길, 나의 왕. 나는 그저 이 인형극이 언제 끝날지가 궁금했을 뿐이야. 그 정도는 대답해 줄 수 있잖아? '우리 사이에'."

 

"하지만 그 답은 너도 알고 있을텐데?"

 

 

죽음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무미건조한 목소리는 여인을 입에 담을 때부터 기묘한 열망을 띄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서리는 지독한 소유욕과 열기에 루케니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모든 것은 내가 엘리자벳(Elisabeth)을 차지할 때까지."

 

 

그 나지막하면서도 열에 휩싸인 간절한 말을 끝내고 죽음은 다시 루케니에게서 등을 보이며 여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루케니는 그런 죽음의 모습이 질리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해서 나지막히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것이 주인의 뜻이라면 루케니는 그저 따를 뿐이었다. 아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셨나이까. 평소에는 찾지도 않는 신을 들먹이며 투덜거리던 루케니는 다시 인간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행색을 꾸렸다. 죽음이 끝까지 여인의 인생에 관여할 것이라 마음먹었다면 여인이 죽음의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 곳에 들를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제 주인의 소망이라면 탐탁치 않더라도 이루어주는 것이 도리일테니까. 묘한 구석에서 성실한 루케니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인간의 모습이 되어갔다.

 

아름다운, 그러나 오싹한 제 날개를 감추고 머리를 다듬었다. 그리고 먼지가 묻은 검은 모자를 쓰고, 옷도 인간들이 흔히 입는 옷으로 바꿔입었다. 어느새 그는 인간, 루이지 루케니(Luigi Lucheni)가 되어 있었다. 

 

루케니는 아직도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의 단 하나밖에 없는 주인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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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루케니가 토드의 심복이었다면 이런 느낌일 거 같아서 한 번 써봤습니다.

루케니 죽천AU로 만약 루케니가 최초의 죽천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설정입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깝죽거리고 비꼬지만 죽음에게는 나름 순종적인 루케니랄까요?

 

사실 그냥 다른 사람한테는 삐딱한 루케니가 토드에게는 무릎 꿇고 내 왕이 원하는 대로- 라는 대사 치는 게 너무 보고 싶어서 쓴건데 뭔가 묘한 분위기가 나와버렸습니다.

 

참고로 나중에 루케니는 엘리자벳의 암살 후 '인간'으로서 죽었지만 엘리자벳이 죽고 상심에 빠진 토드가 루케니를 엘리자벳을 죽게 만든 간접적 원인으로 치부해 천사로 돌아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100년 동안 재판을 받고 빡쳐서 흐콰했다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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