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기/삼장오공] 조각글
W.B - 츠쿠리
01.잠 못 이루는 밤
"…빌어먹을."
삼장은 오늘로 몇 번째로 입에 담는지도 모를 욕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런 삼장과는 다르게 오공은 옆 침대에서 태평하게 꿈나라로 빠져든 상태였다. 그 사실이 삼장은 꽤나 분했다.
오늘로 경운원를 떠나 서역으로 향한지 어엿 한 달. 그러나 그 한 달 동안 삼장의 기분은 최저를 달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경운원의 소중함을 몰랐는데 지금은 달랐다. 삼장은 경운원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경운원에서 삼장은 최고승이었고 때문에 얼마든지 각방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오공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삼장이 축객령을 내리면, 아무도 삼장의 집무실이나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고 나서는 오공은 새로운 먹거리에 정신이 팔려있고, 계속되는 싸움에 지쳐서 바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삼장은 도대체 왜 요괴가 습격해오면 그토록 잘만 일어나는 오공이 삼장이 깨우면 일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깊은 잠에 빠져드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오늘도 모처럼 둘이서 좀 있자고 2인실을 빌린 건 좋았다. 그러나 역시 씻고 오는 동안에 오공은 침까지 흘리면서 꿈나라로 가버린 상태였다. 물론 오공의 자고 있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지만 역시 둘만 있을 때는 깨어있어줬으면 싶었다. 그렇게, 오늘도 부질없는 소망을 중얼거리며 삼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02. 소독
"…오공."
"응? 왜?"
태연자약하게 뒤를 돌아보는 오공의 모습에 삼장은 울컥, 하고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빌어먹을 까마귀인 오곡에게 맞서고, 만신창이가 된 채 간신히 도착한 마을에서 몸을 추스렀다. 오공이 씻고 상처를 치료하는 사이, 삼장은 팔계에게 다가가 그가 없었던 동안 일어난 일을 듣고 왔다. 삼장이 헤이젤, 가트와 머물렀던 인간의 마을과 대립된 요괴의 마을. 오아시스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요괴와 인간 사이의 싸움. 그리고 그 동안 오공에게서 일어난 마음 속의 성장과 오공에게 그런 성장을 겪게 만들어 준 요괴 소녀.
물론 오공이 성장한다는 것은 삼장에게 있어서 기쁜 일임에 틀림없었다.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인 채로 남아 있으면 곤란한 것은 오히려 삼장이니까. 그러나 삼장은 자신이 없을 때 오공이 성장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가 곁에 있을 때, 오공이 성장하기를 바랬다. 그가 언제나 지켜볼 수 있는 상황에서 성장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까마귀."
삼장은 다시 한 번 오곡을 욕했다. 그 빌어먹을 까마귀만 없었더라도 삼장은 오공에게서 멀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오공이 겪는 성장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성장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오공이 성장을 겪은 것은 결정적으로 삼장과 떨어졌던 것이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성장을 하지 못했을지라도, 삼장은 감히 누군가가 오공에게 키스를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제서야 삼장은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깨달았다. 입에서 자조적인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 그 놈의 빌어먹을 키스 말이지.
사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화가 난 것은 오공의 성장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가 오공에게 키스를 한 사실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은 그저 아이의 성장을 보지 못한 부모의 심정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정당화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삼장은 속으로 잠시 키득거렸다. 그리고 인정했다. 자신은 이 바보 원숭이를 좋아한다. 먹보에, 천방지축에, 날뛰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오공을 좋아한다. 이렇게 심장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걸 보니 인정하지 않을래야 없었다.
"삼장...왜 그래? 어디 아파? 아까부터 이상해! 얼굴 찡그렸다가, 욕했다가....배고파?"
이름을 불러놓고는 가만히 있는 삼장이 이상했던지 오공이 말을 걸어왔다. 그제서야 삼장은 상념에서 벗어나 오공을 쳐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채로 삼장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을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왔다. 그는 저렇게 조그마한 녀석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데, 정작 당사자는 저렇게 태평하다. 그래, 반한게 죄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삼장은 한숨을 쉬며 오공을 보았다. 그리고 이름을 불렀다.
"오공."
"응? 왜 그러…읍!"
오공의 대답은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성큼성큼 오공의 앞으로 다가간 삼장이 오공의 얼굴을 붙잡고 입술을 맞대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삼장은 오공의 입술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오공의 입술을 살짝 핥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오공은 살짝 얼이 빠져 있었다. 그 모습에 삼장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소독, 그리고 잘 먹었다."
멍한 오공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것은 소독이자 선전포고였다.
03.각성
전율이 흘렀다. 침묵으로 가득찬 연기 속에서 드러난 모습은 오공이었다. 그러나 오공이면서, 오공과는 달랐다. 평소에 짓는 장난스러운 표정과는 달리 감정이 절제된 표정, 따뜻함이 아닌 냉막함으로 뒤덮힌 금안, 그리고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과 요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뾰족한 귀는 오공과 확연히 달랐다. 그것은 분명, 제천대성의 모습이었다.
"…어째서? 분명히 오공은 요력제어장치를 쓰고 있는데…왜 제천대성의 모습이…!"
오정이 넋을 놓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오정의 말에 대꾸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삼장도, 팔계도 놀란 얼굴로 오공을 응시하느라 정신없는 얼굴이었다. 놀라움과 당황을 내표하고 있는 일행과는 상반되게, 오공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새하얀 연기로부터 느긋하게 걸어나왔다. 오만함이 묻어나는 그의 행동은 오공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정점에 서 있는 절대자의 모습이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날 보는 거지?"
일행의 앞으로 다가온 오공, 아니 제천대성이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경악으로 뒤덮인 반응에 제천대성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런 반응밖에는 없는 건가? 재미없게!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말이지. 왜 그러는 거야, 모두들? 다들 '그 녀석'의 모습일 때는 잘도 말을 걸었잖아? 왜 다들 그렇게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
"…당신은, 오공이 맞습니까?"
오랜 침묵을 깨고 팔계가 물었다. 그제서야 제천대성은 생각났다는 듯이 천진난만하게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하고 쳤다. 그 행동이,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아! 이 모습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라서 그런가? 그렇군, 아직 자기 소개도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제멋대로 떠들었네? 미안!"
고개를 끄덕거리던 제천대성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천대성'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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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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