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버스AU
[우삼총/미호에이] Name
W.B - 츠쿠리
‘네임’ 이라는 것은 몸에 새겨지는 일종의 각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네임을 운명이라는 단어로 더 자주 칭하곤 했다. 애초에 네임이 특정 신체부위에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이니만큼 그렇게 부르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네임이 어떤 원리로 새겨지는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달려들어 연구에 매달렸지만 알아낸 것은 네임이 지극히 불규칙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뿐이었다. 심지어 모든 인간에게 네임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평생을 살아도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태어날 때부터 네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죽기 직전에서야 새겨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운명의 상대와 접촉해야 비로소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네임은 사람도, 시기도 지극히 무작위로 나타났다.
때문에 매의 눈, 쥬라큘 미호크는 오히려 네임이란 것이 저주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운명이라니, 네임은 그런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릴 만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살면서 네임에 목을 매는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다. 노네임, 즉 네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을 터뜨리며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갑자기 나타난 네임에 수십 년 동안 사랑을 속삭이던 아내를 내팽개치고 바다로 뛰쳐나간 사람도 있었다. 장래가 유망하여 지켜보던 한 검사는 운명의 상대를 만났음에도 정작 그 사람은 노네임인지라 기약 없는 짝사랑만 하다 지쳐 자살을 택했다.
결국 네임이라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시답잖은 농간일 뿐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쥐고 흔드는 그 고약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미호크는 차라리 자신이 노네임인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바다를 떠돌다보면 필연적으로 수많은 기연을 마주하게 된다. 미호크는 바다와 함께 살아가며 수없이 피고 지는 얄궂은 삶을 봐왔다. 운명이란 것을 믿지 않는 편은 아니었으나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 또한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차라리 강자로서 운명을 손에 쥐고 휘두르는 것을 택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소식을 접하게 된 ‘검성’이란 이명을 가진 어린 애송이는 그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신문이 떠들어대는 가십거리를 모두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배를 일격에 두 동강 냈다고 하니 그저 그런 쭉정이는 아니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정작 마주하게 된 ‘검성’은 예상보다 훨씬 어리고 유약한 청년이었다. 새하얀 얼굴로 눈만 끔벅거리는 앳된 인상을 보며 내심 기가 찼다. 조건을 내걸며 칭얼거리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덜 자란 어린아이였다. 이번에도 별 수확 없이 돌아가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을 뽑은 찰나였다.
어린아이였던 청년이 순식간에 발도하며 거침없이 검을 휘둘러왔다. 유약했던 인상이 말끔하게 가시고 나른했던 금안이 맹수의 것으로 탈바꿈했다. 아직 미숙한 점이 엿보였으나 나이에 비해 성취한 결과는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이제까지 스쳐 지나보낸 수많은 검사들 중 단연코 우위에 있는 어린 애송이를 보며 미호크는 흡족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세월이 흘러 청년은 훌륭한 사내로 성장했다. 검성이란 이명은 그를 수식하기에 더 이상 부족함이 없었다. 그들의 관계 또한 변했다. 단순히 검을 겨루던 사이는 친구라는 설명이 뒤따랐고 검 말고도 그의 시시껄렁한 잡담을 받아줄 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동시에, 청년의 빛나던 금안은 때때로 빛을 잃고 바스러졌다. 나날이 짙어지는 병색과 힘없이 허물어지는 그의 육신은 계절이 바뀜에 따라 떨어지는 꽃잎과 닮았다. 그럼에도 끝내 그는 꿋꿋하게 삶을 이어서 다음 해를 기약하곤 했다.
하지만 마침내 한계가 닥치고 말았다. 정상결전 이후 반짝 빛을 드러내던 것도 잠시, 오랜만에 마주한 청년의 모습은 참담했다. 담담하게, 허나 끝내 울며 웃으며 안녕을 고하는 그의 모습에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처음 느껴본 감정이 불쾌한 폐부를 휘저었다가 사라진다. 그제야 깨달았다. 운명이란 이름을 가진 신의 농간에 휘둘리는 것은 비단 네임뿐만이 아니었다. 욱신거리는 심장이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눈앞의 이 청년이야말로 자신의 짝임을 알린다. 굳이 네임이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몸에 새겨지는 각인은 그저 허울뿐인 껍데기에 불과하다. 네임이 아니어도, 세차게 뛰어대는 심장이야말로 분명한 증거일진데. 허나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자들은 크고 작은 운명에 휘말려, 중요한 것을 너무 늦게 깨닫곤 한다.
쥬라큘 미호크는 뒤늦게 찾은 제 짝의 마지막 모습을 뒤로한 채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참담한 신음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그는 더 이상 알 수 없어졌다.
운명에 휘둘린 것은 과연 누구였는가.
그리고 마침내 약속의 날이 다가왔다. 야속한 초침은 분침으로 이어져 끝내 시침을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숫자로 옮겼다. 미호크는 한 쪽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흘낏거리며 말없이 손 안에 든 와인만 홀짝였다. 종소리가 정확히 열한 번 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번의 종소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
가슴팍에 새하얀 빛무리가 어린다. 간질거리면서도 생경한 고통이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이윽고 고개를 든 그의 눈에 가슴에 새겨진 선명한 이름이 보인다.
‘AMY'
성이 없는 익숙한 세 글자 이름에 쥬라큘 미호크는 이를 악물었다. 가슴팍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리다. 쿵쾅거리는 심장은 그에게 제 짝을 찾을 것을 종용했으나 그는 차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신이시여, 왜 하필 지금입니까. 왜 지금에서야, 왜 이렇게 늦게서야..!
원망도 잠시, 미호크는 벽면에 걸려있는 코트를 꺼내들었다. 코트의 안주머니에는 청년이 한 때 그의 거처에 머무를 적에 만든 비브르 카드가 놓여있었다. 미호크는 서둘러 그의 흑도를 챙기고 낡은 고성을 벗어났다. 목적지는 그의 운명이 있는 곳이었다.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작은 나룻배 하나로 반나절을 꼬박 항해했다. 어둑하던 하늘이 밝아지고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까지 올라왔다. 미호크는 품속의 회중시계로 시간을 가늠했다. 지금의 시각은 오후 2시에 가까워져가는. 가장 지면이 태양빛을 많이 머금었을 시각이다.
신세계의 무인도로 안내하던 비브르 카드가 돌연 방향을 가리키는 것을 멈춘다. 그리고 미호크는 자정에 느꼈던 그 생경함이, 다시 가슴팍을 간질이는 것을 느꼈다. 다만 저번에는 이름이 새겨졌다면, 이번에는 이름이 지워지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안 돼....!”
그는 필사적으로 조금씩 자취를 감추는 글자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글자는 그의 손가락 사이로 무심하게 빠져나간다. 사르륵, 사르륵. 마치 모래가 새어나오는 것 같은 소리가 파도소리를 짓누른다. 잠시 후, 글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듯이, 그토록 무심하게.
미호크는 더 이상 아무 이름도 새겨져있지 않은 그의 가슴과, 미동도 하지 않는 비브르 카드를 내려다보았다. 글자가 있었다가 사라진 만큼의 공허함이 그를 덮쳤다.
거세게 닥쳤다가 허물어지는 새하얀 물거품처럼, 운명은 이다지도 얄궂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그의 네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쥬라큘 미호크는 낯익고도 생경한 감각에 감았던 눈을 떴다. 지금 시각은 오후 2시 19분. 따스한 햇살이 지면을 데울 화창한 낮의 시간.
그에게 다시 운명의 이름이 찾아왔다.
+) 쥬라큘 미호크와 에이미는 서로에게 네임이 있었다.
+) 그러나 에이미는 엄연히 말하자면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기에 네임의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 에이미가 죽는 날, 에이미는 비로소 완전하게 이 세상을 벗어날 결심을 했다. 분리되어 있던 두 개의 세계가 에이미의 영혼을 합치기 위해 겹쳐지는 순간, 에이미의 삶은 비로소 원피스의 세계에 받아들여져 네임이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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