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는 개그가 난무합니다

-상상과 날조 주의






[우삼총] 영혼체인지 외전의 막간

W.B - 츠쿠리







01

 

다들 모였지요이?”

 

모비딕 구석에 있는 널찍한 창고에 흰 수염 해적단의 주요 인사들이 모였다. 각 번대의 대장들은 물론이고 쟁쟁한 무력을 갖춘 일반 선원들까지 굳은 표정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토록 엄청난 인사들이 은밀하게 모여 있는 까닭은. 그들이라면 모비딕의 작전 회의실을 정당하게 빌릴 수 있음에도 왜 굳이 이런 퀴퀴한 냄새가 나는 구석진 창고에서 회의를 하는 것일까.

 

에이미는 방에 있지요이?”

 

그래. 다른 선원들에게 부탁해 되도록 방에 있게끔 감시해달라고 했으니 틀림없어.”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해. 만약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에이미가 더 삐뚤어질지 몰라.”

 

!”

 

외마디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껄렁한 자세로 앉아 껌을 질겅질겅 씹는 에이미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한 광경에 몸을 떨던 사람들은 사회를 맡은 1번대 대장 마르코가 몸을 일으키자 침을 꿀꺽 삼키며 집중했다.

 

마르코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에이미 사춘기 대비 및 대책 회의를 시작하겠다요이!”

 

그렇다. 겉보기에는 해군 본부라도 습격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분위기였으나 실상은 그저 어릴 때부터 둥기둥기 키워온 에이미의 뒤늦은 사춘기 대책 회의반이었다.

 



 

02

 

흐윽, 우리 에이미가 욕을! 무려 새끼라는 단어를 썼다고!”

 

그건 양반이지 이 사람아! 난 아까 시발이라는 말도 들었어!”

 

,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육두문자를...”

 

와글와글. 잇따라 생생한 증언이 이어졌다. 단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한 증언은 오히려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참담한 실정이었다.

 

심지어 에이미 녀석, 아버지에게 다짜고짜 흰 수염이라고 불렀다고! 아버지만 보면 좋아서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던 녀석이 말도 놓고 말이야! 아버지가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얼마나 상심해 하시는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구만!”

 

, 아버지가 에이미를 좀 예뻐하셨어야지. 하긴 에이미는 어릴 때 무쟈게 천사 같았으니 말이여.”

 

어릴 때만 천사였는 줄 알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걔는 여전히 천사였어, 천사!”

 

바다에서 건져놓았던 무뚝뚝한 인상의 꼬맹이는 알고 보니 형제들의 얼굴만 봐도 좋아서 실없이 웃어버리는 햇살 같은 아이였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허리의 반도 오지 않던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그러나 형제들에게 있어 에이미는 여전히 모비딕을 활발하게 누비던 어린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어느새 사춘기라니! 다 컸구나 싶어 감개무량한 한편 대체 에이미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 싶어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비딕 사람들은 열 살짜리 아이에게 고무오리를 사줄 정도로 육아에 문외한이었던 것이다.

 

잠자코 앉아 이야기를 듣던 마르코가 결국 치솟는 혈압을 감당하지 못해 머리를 감싸 쥐더니 마구 삿대질을 해댔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요이! 평소에 말 곱게 쓰라고 했어, 안했어? 애 앞에서 할 말 못할 말 구분 않고 다하더니 이게 뭐여요이!”

 

, 마르코 대장! 진정해!”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이?! 애 앞에서 해적답지 않다는 둥 온갖 참견은 다 하더니 이게 뭐냔 말이여! 그러니까 애가 상처받고 삐뚤어졌겠지!”

 

마르코의 말에 참회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흐윽, 맞아! 한두 번 욕을 한 솜씨가 아니던데 그 어린 게 얼마나 흰 수염 해적단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었으면 욕을 연습 했겠어?”

 

오늘 보니까 아주 찰지던데? 훌쩍, 에이미 녀석 훌륭한 해적이 되어 버렸다구!”

 

이대로 에이미가 안 돌아오면 어쩌지?”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사춘기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어줄 거라구, 에이미는!”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희망사항이었다. 사춘기가 얼마나 오래갈지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그 결과 또한 미지수이지 않은가. 그들만 해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각자의 과거가 있었던지라 차마 확언을 할 수 없었다.

 

, 그래도 에이미, 상냥한 건 여전하니까! 아까도 밥 먹고 나서는 이렇게 맛있는데 많이 못 먹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줬어.”

 

가라앉은 분위기를 어떻게든 띄우기 위해 삿치가 필사적으로 대변했다. 사춘기가 와도 천성이 상냥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투박하고 거칠어진 말투에 가려져서 그렇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착하고 고운 에이미의 심성이 엿보였다.

 

형제들이 앞 다투어 동의했다.

 

맞아! 에이스 챙기는 것도 여전하고. 아까 뜨거운 국물을 쏟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잖아. 그건 에이미의 상냥함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래! 사춘기 따위로 에이미를 평가하면 안 돼! 에이미는 여전히 착하고 천사 같은 우리 막내인걸!”

 

에이미의 몸속에 들어가 있는 보이가 알았더라면 욕을 한 사발 붓고도 남을만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보이는 현재 형제들의 필사적인 만류 하에 선실에 갇혀 비타민 과다 섭취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물론 귀한 과일을 자기만 먹을 수는 없다며 선실 앞을 지키는 선원들에게 건네주어 사춘기가 왔을 뿐 역시 상냥한 에이미!’ 라는 말을 듣게 되지만 이건 나중의 일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그렇다면 에이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이.”

 

대하긴 뭘 대해. 머리에 총알 한 방 박아 넣으면 제 정신으로 돌아오겠지.”

 

여태껏 탐탁찮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조우가 손에 들고 있던 리볼버에 탄창을 장전하며 퉁명스레 말했다. 에이미가 어디 아픈가 싶어 진찰하려다가 난 멀쩡하니까 내 몸에 손대지 마쇼.’ 라는 말을 들은 탓에 현재 그의 신경은 매우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마르코 못지 않게 에이미를 오래 봐왔던 이조우로서는 웃는 낯으로 의사 선생님, 하고 부르던 꼬맹이의 태도가 돌변하자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외모와는 다르게 성격만큼은 누구보다 급한 이조우다. 당장이라도 에이미의 얼굴을 두 쪽 낼 것 같은 기세에 형제들이 화들짝 놀라 만류하기 시작했다.

 

이조우, 참아!”

 

애를 매로 다스리면 쓰나! 그리고 이조우가 매일 총만 쏴 갈기니까 에이미가 그렇게 삐뚤어진 걸 수도 있어!”

 

그래! 애는 사랑으로 품어줘야지!”

 

우리의 사랑이라면 에이미도 금세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논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랑타령에 이조우의 미간이 급격히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어디 해적 주제에 사랑 타령이나 하고! 이게 무슨 사랑 노래로 모든 게 해결되는 모 애니메이션인 줄 알아? 장르가 달라, 장르가! 이조우가 제 4의 벽을 뛰어넘을 뻔한 찰나였다.

 

마르코 대장! 큰일 났어!”

 

누군가 창고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왔다. 에이미의 선실 앞을 지키고 있던 선원 중 한 명이었다. 마르코가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선원은 가쁜 숨을 내쉬며 폭탄을 투하했다.

 

에이미 녀석이 글쎄 3일 뒤에 친구를 만나러 모비딕을 잠시 떠나겠대!”

 

쿠궁! 묵직한 효과음과 함께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마르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에이미 녀석! 설마 가출을 꿈꾸는 건가요잇?!”

 

청소년기의 반항이라고 하면 모름지기 나쁜 친구와 어울려 돌아다니는 게 아니던가! 술담배를 하며 거리를 들쑤시고 다닐 에이미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빠지는 기분이다. 마르코는 몰려오는 두통에 뒷목을 움켜쥐며 비장하게 선언했다.

 

당분간 에이미는 외출 금지다요이!”

 

쉬쉬하고 있지만 마르코는 모비딕 내의 제일가는 에이미 팔불출이었다. 덕분에 보이는 때 아닌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다.

 

니미 시벌, 그러니까 이 몸을 다시 에이미한테 돌려주려면 일단 애들을 만나야할 거 아냐! 보이는 장장 이틀 동안이나 가출이 아니며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아닌 그저 친구들 간의 건전한 모임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켜야 했다. 욕설만 아니었다면 과정이 한결 수월했을 것을, 상황이 너무 엿 같은 나머지 대화 중간 중간에 욕을 자제할 수 없었던 보이는 결국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행동계획서까지 갖다 바쳐야 했다.

 

 



03

 

한편 마린포드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온화해졌나 싶었던 벚꽃공주는 아니나 다를까 다시 그 불같은 성미를 드러내어 지켜보던 사람들로 하여금 심적 평화를 갖게 했다. 그럼 그렇지! 그 성질이 아니면 우리 보이 대령님이 아니지! 너무 적응된 나머지 해군들은 미소보다 욕설을 더 선호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보이의 몸속에 들어가 있는 에이미는 아카이누의 부관이라는 상황 덕분에 원치 않게 강제로 대면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 심기가 불편해진 에이미는 걸핏하면 스트레스를 해적소탕에 풀기에 이르렀다. 어차피 서류처리는 봐도 모르겠고 나중에 보이가 한 번에 몰아서 하겠지! 원래 몸이 아닌지라 적응하기가 좀 까다롭긴 했지만 어쨌거나 같은 먼치킨의 반열이 아니던가. 흰 수염 해적단에 있을 때도 밥 먹듯이 덤벼오는 해적을 상대했던 에이미는 오히려 손속에 더 자비가 없었다.

 

보이 대령님, 어쩐지 더 터프해지신 것 같아.”

 

크흑, 멋있어! 역시 보이 대령님이야!”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건 간에 에이미는 끓어오르는 화를 삼키기 바빴다.

 

뒈져!!! 아카이누!!!!’

 

마음의 소리와 발차기가 나란히 나갔다. 분노를 200% 실은 발차기에 해적 여럿이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알 게 뭐람! 에이미는 경쾌한 몸놀림으로 해적들을 하나하나 즈려밟았다.

 

이건 뭐 화병 나서 내가 먼저 죽을 지경이네! 보이의 몸만 아니었으면 기회를 노려 쓱싹해버릴 텐데! 왜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죽이질 못하니, 엉엉! 그리고 아카이누 이 자식은 왜 자꾸 눈앞에 얼쩡거리고 난리야, 죽이고 싶게!

 

울화통에 속만 타들어갔다. 그러나 이 사실을 주변의 그 누구도 몰랐다. 아카이누 덕분에 본의 아니게 보이의 몸에 완벽하게 녹아들어버린 에이미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과도한 것을 제외하고는 순조로운 삼일을 보냈다.

 

 



04

 

그리고 마지막으로, 씨씨.

 

그녀는 그 누구와도 바뀐 일이 없기에 다가올 모임 날짜를 기다리며 한가롭게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저녁 늦게 걸려와 서로의 이야기를 하소연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는 점이다.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씨씨는 하소연을 듣는 것이 제법 즐거웠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삼일 후, 에이미와 보이가 원래대로 돌아왔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에이미와 씨씨가 바뀐다는 것을. 사춘기가 접어들기를 기대했던 모비딕 사람들이 침착하고 차분한 또 다른 에이미를 대면하게 되어 뒷목잡고 쓰러지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나중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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