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삼총/미호에이] 편지

W.B - 츠쿠리







그날도 미호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비딕에 접근해 에이미를 불러냈다. 에이미는 여전히 대련하기 전에 실없는 말을 종알거렸고 미호크는 능숙하게 넘기거나 간단하게 대꾸해주곤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날따라 에이미가 건넨 것이 와인이 아니라 편지라는 점일까. 손바닥만 한 크기의 편지는 봉투가 붉은 색이었다.

 

으아아! 지금 열지 마세요!”

 

봉투를 열어보려던 찰나 에이미가 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비명을 질렀다.

 

애당초 지금 열어보라고 할 게 아니면 왜 준 거지.”

 

미호크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봉투를 열어보기 위해 멈춰있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그러나 편지를 채 꺼내기도 전에 손은 재차 항로를 가로막혔다. 까만 점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새하얀 손이 겁도 없이 미호크의 손을 덥석 잡아챘다.

 

, 열지마세요! 이건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서, 제가 열어도 된다고 할 때 열어보셔야 한다구요!”

 

눈을 꼭 감고 말하는 모습이 자못 필사적이었다. 대체 이 안에 든 것이 무엇이기에? 미호크는 흠, 하고 낮은 숨을 흘리고는 편지를 꺼내려던 손을 거두었다. 내용물에 대한 궁금함보다 나중에 그가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더 커졌다.

 

더 이상 미호크가 열어보려는 생각이 없는 듯하자 눈치를 보던 에이미가 얼굴을 붉히며 후다닥 물러섰다. 미호크의 손을 붙잡고 있었음을 이때서야 인지한 모양이다. 시체마냥 일말의 온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싸늘한 온도에 기분이 가라앉을 만도 하건만,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들어 미호크는 말없이 그의 등에 있던 흑도를 빼들었다. 그리고 가차 없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그 눈빛은 흡사 창공에서 먹이를 노리던 매와 같았다.

 

아니 갑자기 달려드는 법이 어디 있어요! 으악!”

 

과연, 예상대로 허전함은 금세 채워졌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에이미는 미호크를 만날 때마다 빈번히 편지를 건넸다. 크기는 여전히 손바닥만 한 크기였으나 색이 달랐다. 처음 만날 때는 붉은 색이더니 두 번째에 건넨 것은 주황색이었다. 세 번째에 건넨 것은 노란색, 네 번째에 건넨 것은 초록색, 다섯 번째에 건넨 것은 파란색 그리고 여섯 번째에 건넨 것은 남색, 일곱 번째에 건넨 것은 그를 닮은 보라색이었다. 무지개의 색이란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으나 마지막 일곱 번째, 보라색 봉투를 받은 뒤에는 또 어떤 것이 주어질지 알 수 없었다.

 

미호크는 에이미에게 편지를 받을 때마다 물었다.

 

아직인가?’

 

그는 답했다.

 

, 아직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봉투를 받을 때조차 미호크는 물었다.

 

아직인가?’

 

그는 답했다.

 

, 아직. 하지만 아마도 곧.’

 

그렇게 말하는 그는 웃었던가? 부드럽게 빛나던 금색 눈동자를 곱게 휘며, 그는 고요히 웃었던 것 같다. 석양이 지는 노을은 유독 찬란했고, 수평선 너머로 저무는 태양을 등 뒤로 맞이하던 청년은 상냥한 빛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를 휘감고 있던 분위기는 지극히 온화했고 평온했다. 그래서 미호크는 다음 만남과 다음의 편지를 기약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미호크는 오랫동안 편지를 받지 못했다.

 

검성에이미의 흰 수염 해적단 탈주 그리고 정상결전.

 

아주 오랫동안 침묵의 밤이 이어졌다. 숨을 이어나가는 것조차 버거운 하루하루였다. 피로 물든 바다만큼 슬픔에 물든 인간은 신음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들에 정신을 온전히 가누기에도 힘겨운 나날들이었다.

 

어느새 미호크의 뇌리에서 편지는 서서히 잊혀져갔다. 다만 유독 잔인하리만치 상냥했던 그 태양의 빛깔이 오랫동안 마음 한 자락에 남았다.

 

 



편지가 떠오른 것은 편지를 주었던 사람이 죽은 해, 그의 생일이었다. 미호크는 연보랏빛 캄파눌라 꽃이 만개하던 초원을 밟아 붉디붉은 술 한 잔을 죽은 자에게 바치고 왔다. 착잡한 마음에 성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의 잔에는 붉디붉은 술이 넘실거렸다.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에이미가 처음 건넨 붉은 편지가 생각난 것은.

 

미호크는 술잔을 두고 그의 서재로 향했다. 책상 서랍 안으로 손을 뻗자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일곱 개의 봉투가 나란히 딸려왔다.

 

열어보라는 말은 끝내 듣지 못했지만, 네 녀석 또한 내게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으려고 했으니 이 정도는 봐주겠지.”

 

허공으로 혼잣말을 내뱉은 미호크는 봉투를 차례대로 열어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읽었다. 각 봉투에 들어있는 것은 내용이라고 부르기에도 우스울 정도로 짧은, 고작 한 글자짜리 편지조각.

 

붉은색 봉투에는 []

주황색 봉투에는 []

노란색 봉투에는 []

초록색 봉투에는 []

파란색 봉투에는 []

남색 봉투에는   []

보라색 봉투에는 []

 

좋아해요, 미호크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서

 

그리 말하며 멋쩍게 웃던 얼굴이,

 

내가 열어보라고 할 때 열어보셔야 해요.’


부드럽게 휘어지던 눈동자가,

 

그리 말하며, 그는 웃었던가.

 

미호크는 편지를 움켜쥐었다. 그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그가 필사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미호크는 이내, 보라색 봉투의 가장 안쪽에 또 다른 편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그마한 하얀 종잇조각에는 눈에 익은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또 다른 글자가 써져있었다.

 

[미안]

 

그것은 무엇에 대한 사과인가. 미호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글자가 써진 하얀 종잇조각을 뒤집어, 또 다른 하얀 공간을 까만색 잉크로 채워 넣었다.

 

[나도 좋아한다, 에이미]

 

양면이 까맣게 물든 종이를 흰 봉투에 넣어 봉했다. 미호크는 다른 일곱 개의 봉투를 그러모아 흰 봉투와 함께 다시 책상 서랍 안으로 채워 넣었다.

 

미호크는 그 이후로 좀처럼 서재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서재로 향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일 년 후였다. 편지를 주었던 사람이 죽은 지 어느덧 이 년, 또 다시 그의 생일이 돌아왔다. 그날도 미호크는 어김없이 연보랏빛 캄파눌라 꽃이 만개하던 초원을 밟아 붉디붉은 술 한 잔을 죽은 자에게 바치고 왔다.

 

그리고 일주일 후, 미호크는 편지를 받았다. 발신인 불명의 새하얀 봉투였으나 낯이 익었다. 봉투를 열었더니 익숙한 글씨가 그를 반겼다.

 

[이제 읽어도 돼요]

 

편지에 담겨있는 것은 상냥한 빛깔로 물든 태양의 색.

 

그토록 기다리던 다음 만남과 다음의 편지가 돌아왔다. 미호크는 편지에 깊게 입을 맞추었다.

 

보내지 못한 답장이 전해질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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