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장 삼대째/에이지] Platonic

 

 

 

 

 

 

 

 

도쿄에서 소비되는 생선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츠키지 어시장. 수많은 중간 도매상들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생선 도매상 '어진'은 요새 들어 시끌벅적하다. 새로 들어온 어전의 삼대째, 아키키 쥰타로가 그 시끌벅적한 소리의 중심인데, 먹보에 왕초보인 신입 중간 도매상이면서 늘 묘하게 사람을 이끈다. 오늘도 그는 처음 보는 생선을 보며 호기심에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고 그 주위로 어떻게든 삼대째의 시선을 돌려보려는 마사, 생선을 상세하게 설명 해주려는 타쿠야, 느긋한 표정으로 구경을 하는 에리와 와카가 있었다.  

 

그런 삼대째를 지켜보는 어진 최고의 중간 도매상인 에이지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삼대째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나온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소탈한 성격과 열정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삼대째가 어시장에 온 이후로 어시장의 흐름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어시장이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었고, 어시장의 활로가 다양하게 뚫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의 입가에서 웃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삼대째를 만나는 사람들은 기분 나빴던 일은 어느새 잊고 그를 따라 웃음을 짓곤 했다. 심지어 신궁의 삼대째인 슈이치로마저 처음에 보냈던 못마땅했던 시선을 지운 채 점점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지 않은가. 그것은 어시장에 찾아온 놀랄만한 변화였다.

 

사실, 에이지는 아키키 쥰타로라는 남자가 어진을 잇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살을 찌푸렸었다. 전직 은행원에, 사람을 무자비하게 해고시킨다는 소문은 그의 귀에도 들려왔다. 물론 소문 전부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풋내기이던 에이지를 어진 최고의 중간 도매상으로 성장시킨 이대째 사장님이 맞이한 사위다. 사장님의 귀한 딸인 아스카를 데려간 남자가 그렇게까지 형편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으로 불안감이 가득찬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어진이 소중했다. 어진은 그의 생활의 보람이며 소중한 장소였다. 그런 곳에 새로운 삼대째가 오는데 소문부터 좋지 않으니 불안감이 엄습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진에 도착한 삼대째라는 남자는 생각과는 다른 남자였다. 삼대째라는 남자가 어시장을 헤메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삼대째를 찾으러 갔을 때, 정작 그는 어슬렁어슬렁 어진에 도착해서 생선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물을 뒤집어쓴 양복에 넥타이를 하고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생선을 살펴보는 남자. 가게를 지키며 사나운 눈매에 무뚝뚝한 인상의 삼대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에이지는 쥰타로가 어설픈 초보 손님인 줄 알고 쫓아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맹한 남자가 새로운 삼대째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 때만큼 에이지는 놀란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실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생각만큼 인상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척 보기에도 초보에, 생선이라고는 본 적도 없는 사람일 것이 뻔했다. 그런 남자에게 가게를 맡긴다니 지나가는 개가 비웃을 거라고 에이지는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괜히 심술이 나서 에이지는 삼대째를 축하하기 위해 쓰일 방어를 쥰타로에게 직접 골라보라고 말해버렸다. 평소의 에이지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그 정도의 눈도 갖지 않고서는 어진을 맡길 수 없다는 오기도 있었다. 그런 에이지의 마음을 이해한 것인지 지켜보던 이대째 사장님도 흔쾌히 허락을 했고, 쥰타로도 방어를 골라보겠다며 헤픈 웃음을 지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에이지가 생선을 모르는 초보 삼대째를 골탕먹이려고 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골라보겠다고 호기롭게 말하더니 과연 둔한걸까, 아니면 그걸 알면서도 선선히 넘어간 것일까.

 

그런데 의외로 아키키 쥰타로는 훌륭한 방어를 골라냈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훌륭한 방어였다. 에이지는 그 때,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생겼다. 이 남자의 깊이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 그것은 한 사람에게 보이는 일종의 관심에 가까웠다.

 

그 후로 어진에 자리잡은 삼대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온전히 에이지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켜볼수록 처음에 미덥지 못하던 그의 모습은 점차 다른 모습으로 에이지의 머릿속에 새겨져갔다. 왕초보에, 둔하고, 덜렁대지만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 따뜻함과 열정은 에이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켜갔다. 그는 서서히 둥지를 틀어가고 있는 새와 같았다. 자유롭게 날 수 있지만 항상 둥지로 돌아와서 주변 사람들을 품어준다. 에이지는 그런 삼대째의 곁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어느새 에이지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자리잡아 버렸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천명의 사장님이 다시 요리계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을 거절해버린 것은. 물론 요리는 에이지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이었다. 비록 요리를 위해 생선을 배우러 어시장에 왔다가 생선의 매력에 빠져 어시장에 자리를 잡게 되었지만 요리는 어시장과 버금갈 정도로 에이지의 생활의 일부였다. 천명의 사장님이 제시한 조건은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어시장에서 벗어나 요리계로 돌아갈려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다. 에이지에게 있어서도, 에이지와 장래를 함께할 치아키에게 있어서도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에이지는 요리계에서 일하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무언가 하나 빠져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이지는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머리가 아닌 심장이 어진에 남아서 삼대째를 보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치아키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두근거리고, 말랑말랑한 그런 달콤쌉싸름한 감정. 

 

 

"으악, 삼대째! 또 먹을 생각이에요?"

"하하, 맛있어 보이는 생선인데 보기만 하면 아깝잖아? 에이지! 오늘도 부탁할게!"

 

 

이런, 처음 보는 생선에게 또 삼대째가 마음을 뺏겨버린 모양이다.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와 생선을 내미는 삼대째를 보며 에이지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네, 맡겨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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