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프랑라이] 회상

W.B - 츠쿠리

 

 

 

 

 

 

아프다. 온 몸의 신경들이 저릿거리면서 통증을 호소한다. 라이제르는 붉은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블러드 필드를 한 번 사용한 것만 해도 몸이 견디지 못하는데 봉인까지 풀었으니 당분간은 이 통증을 감안하며 지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봉인을 푼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노블레스와 로드는 한 쌍을 이루는 존재. 로드가 자신의 구실을 하지 못하면 노블레스의 힘 또한 완벽해지지 못한다. 그래,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서서히 의식이 사라져간다. 조금이라도 성지에 들어가 쉬는게 어떻겠냐는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의 말이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서 계속해서 되풀이 되었다. 물론 성지에 들어가면 조금이나마 안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순간의 안식이 아닌,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될 지도 몰랐다. 쇠잔해진 몸이 영원의 안식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약간의 안식을 취하려고 해도 시간의 압박이 그를 죄여왔다. 그래서 그는 결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아직은 영원한 잠을 자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에 끝까지 성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무엇보다 그가 영문 모를 820년이란 시간 동안 긴 안식을 가졌을 때, 그를 찾아 전 지역을 힘들게 헤맸을 프랑켄슈타인에게 다시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에 그는 결코 성지에서 잠들 수 없는 처지였다. 하긴 지금도 걱정을 끼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씁쓸하게 읊조린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뱉어지지 못하고 사라졌다. 프랑켄슈타인이 다시 걱정을 하기 전까지 의식이 돌아와야할텐데. 라이제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의식을 놓았다. 감긴 눈꺼풀 너머 프랑켄슈타인의 걱정스러운 푸른 눈동자가 보인 것 같았다.

 

 

 

 

 

 

 

 

 

 

 

 

◈ ◈ ◈

 

 

 

 

 

 

 

쿠웅!

 

거대한 폭음이 울려퍼졌다. 땅이 움푹 패이고 질식할만큼 매캐한 연기가 폐를 압박해왔다. 프랑켄슈타인은 콜록거리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미지의 것을 연구하는 자로서 노블레스의 영토인 루케도니아에 들어가 호기심을 충족시키자는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확실히 루케도니아는 그의 부족한 호기심을 충족시키에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인간들이 사는 곳에서 그는 정상에 군립하는 존재였으나 이곳에서는 고작 두 명만으로도 자신을 충분히 몰아붙이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건가."

 

 

프랑켄슈타인 못지 않게 거친 숨을 내뱉으며 금발의 남자가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왔다. 금발머리 남자의 뒤를 이어 은발을 가진 중년의 남자 또한 프랑켄슈타인의 도주 범위를 서서히 좁혀오고 있었다. 케르티아가의 가주와 란데그르가의 가주라고 했던가. 두 남자 또한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지만 상대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인지라 수적으로는 열세임이 분명했다. 이거 곤란하게 되었는데. 프랑켄슈타인은 혀를 차며 다크 스피어를 강하게 쥐었다. 상처입은 몸이 욱신거렸지만 이대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얼굴에서 감도는 비장한 기색을 읽었는지 두 남자 또한 소울 웨폰을 강하게 그러쥐었다. 

 

"아직도 우리를 상대할 생각인가. 그만 포기하고 순순히 잡혀주는 게 네 몸에도 이로울텐데? 로드의 생포하라는 명령만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너를 좀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성한 루케도니아에 침입하여 중앙 기사단을 욕보이고 아름다운 대지를 심하게 손상시킨 죄는 죽어 마땅하나 로드의 앞에 가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쎄……."

 

 

그냥 '항복을 해라' 라고 간단히 말하면 될텐데 하여튼 귀족이란 것들은 겉멋만 들었군. 프랑켄슈타인은 속으로 비웃으며 대답을 느릿하게 끌었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어느 정도 체내에 산소가 공급이되자 프랑켄슈타인은 입을 열었다. 입가에는 비릿한 웃음이 걸린 채였다.

 

 

"미안하게도 말이지, 우리 과학자란 생명체는 속박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존재거든. 아, 너희처럼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말을 길게 끄는 취미는 없으니 간단하게 말하지. 거절한다."

 

 

두 남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럼 우리는 네 반응에 대해 합당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겠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남자가 달려들었다. 다시 한 번 거대한 폭음이 울려퍼졌다.

 

 

 

 

 

 

 

 

"헉헉…!"

 

프랑켄슈타인은 곁눈질로 뒤를 살피며 끊임없이 달렸다. 끈질기게 따라오던 두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몸을 숨기는데 급급해 주변을 살펴보지도 않고 숲으로 들어왔지만 어쩐지 이 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끈질기게 따라붙던 두 남자의 기색이 사라졌던 것 같다. 프랑켄슈타인에게는 상처 입고 도망치던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두 남자에게는 붙잡을 수 있는 흔치 않을 기회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추격을 멈춘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프랑켄슈타인은 달리는 것을 멈추고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끝없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은 새소리나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문득 프랑켄슈타인은 예전에 심심풀이로 읽었던 소설 하나를 떠올렸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무서운 괴물 때문에 아무도 살지 않게 된 저주받은 숲에 한 소녀가 찾아가 괴물의 얼어붙은 심장을 녹여준다는, 뭐 그런 시시한 내용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은 피식 웃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떠올린 것을 보니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아무리 현재 처한 상황과 소설 속의 배경이 비슷하다고 해도 그럴리가 없는데 말이다. 애초에 품격을 중시여기는 노블레스들이 괴물 따위를 그들의 땅에 방치해둘리가 없었다. 

 

프랑켄슈타인은 거친 숨을 내몰아쉬며 걸음을 옮겼다. 고요하기 짝이 없는 이 숲이 수상쩍은 것은 사실이지만 설사 괴물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프랑켄슈타인에게는 휴식이 절실했다. 그러나 추격자들이 없다는 안심 때문일까. 걷는 속도는 아까보다 현저히 느려져 있었다. 게다가 슬슬 한계가 닥쳐오는 것인지 시야가 흐릿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프랑켄슈타인은 몽롱한 시야를 애써 바로잡기 위해 고개를 여러 번 흔들었지만 소용 없었다. 이제는 발마저 꼬여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가 걸어가는 길이 붉은 핏자국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힘의 부작용이 이제서야 오는 건가. 프랑켄슈타인은 발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어떻게든 오늘 밤을 버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숲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두 남자가 이 숲에 따라오지 못한다는 짐작은 꽤나 신빙성 있는 추측이었다. 적어도 쫓기는 신세보다는 나을 테지. 조금이라도 견뎌서 어떻게든 내일 아침까지는 몸을 지탱해야 한다. 그러니 적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만 버티자. 프랑켄슈타인은 마음을 다지며 애써 발을 놀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동안의 결심이었을 뿐이다. 결국 한계가 그를 덮쳐왔다. 프랑켄슈타인은 상처 부위를 움켜쥐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스라이 쏟아지는 달빛 속에서 풋풋한 풀내음이 코를 찔러왔다. 여기까지인가? 프랑켄슈타인은 지금 자신의 몸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직감했다. 온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벽돌이라도 얹어놓은 것 같은 무거운 눈꺼풀이 그에게 눈을 감으라며 유혹했다. 그 유혹의 달콤함을 이기지 못하고, 프랑켄슈타인은 곁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왠지 그의 의식의 끝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프랑켄슈타인은 깊은 수마에 몸을 맡겼다.

 

 

 

 

 

 

 

 

 

향긋한 라벤더 향이 코 끝을 간질였다. 프랑켄슈타인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간질간질한 감각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따가운 불빛이 그의 시야에 강렬하게 와닿았다. 머리를 울리는 두통에 그는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켄슈타인은 그의 의식에서 마지막 남아있던 기억을 생각해냈다. 그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몸이 따라와주지 않았다. 프랑켄슈타인은 미약한 신음을 흘리며 상처부위를 부여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고풍스러운 가구들, 그리고 우아한 미술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방 안을 채우고 있는 모든 물건들이 인간 세계에 내놓으면 평생을 부귀를 누려도 남을 만큼 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화려한 물건들을 보고 프랑켄슈타인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생각은 '차갑다'는 것이었다.이 화려한 물건들에서는 그 어떠한 애정이나 온기, 심지어 사용한 흔적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귀하게 모아놓은 장신구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때였다. 채 의식하지도 못했는데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난건가."

 

 

프랑켄슈타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던 자리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니, 단순히 한 남자가 서 있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방 안의 공기를 압도하는 것 같은, 흡사 신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아름다운 남자가 그 곳에 있었다.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프랑켄슈타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은빛의 십자가가 남자의 귓가에서 흔들리며 샹들리에의 영롱한 불빛을 반사시켰다. 남자는 불과 한 뼘 정도의 거리만을 남겨두고 멈춰섰다. 남자의 홍옥처럼 붉은 눈이 프랑켄슈타인을 흩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순간적으로 고고한 야수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남자는 오만했으며 그 오만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기품 있었다.

 

남자는 한동안 말없이 프랑켄슈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동안'을 겪는 내내 프랑켄슈타인은 전신을 지배하는 긴장감에 마른 침을 삼켰다. 어떤 상황이 그에게 닥쳐올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이곳에서 도망 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는 것과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남자는 그가 만난 노블레스들 중에서도 그 높이를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프랑켄슈타인이 그에게 닥쳐올 미래에 대해 열렬한 내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을 때, 마침내 남자가 입이 열렸다.

 

 

"…혹시 붕대를 감을 줄 아는가?"

 

 

그토록 깨지길 바라던 침묵이 깨지던 순간, 정작 프랑켄슈타인은 멍하니 되물었다.

 

 

"…네?"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그 때 남자의 얼굴은 마치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아 보였다.  

 

 

 

 

 

 

 

 

 

 

남자는 말이 짧았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용케도 그 짧은 말을 토대로 남자가 이야기하려는 바를 재구성 해낼 수 있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남자는 아마 '나는 붕대를 감을 줄 몰라, 미안.'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프랑켄슈타인은 다친 자신의 몸에 약만 발라져있을 뿐, 지혈을 위한 붕대가 감겨져 있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붕대 대신 담요로 보이는 천이 자신의 몸에 둘둘 감겨져 있었다. 솔직히 말해 쓴 흔적이 보이지 않는 먼지투성이의 천을 담요로 알아본 것이 용했다. 아무리 담요를 수백 장 감겨놓으면 뭐하나. 지혈이 될 리가 만무한데. 프랑켄슈타인은 처음으로 자신의 체력이 다른 인간들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다른 인간들이었으면 지혈이 되지 않은 순간 과다출혈로 죽었다.

 

아니 아무리 귀족이라지만 다치면 붕대도 안감나? 이런 의문점은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떠올리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켄슈타인은 깨달았다. 귀족들이 이상한게 아니라 이 남자한테 뭘 기대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그도 그럴 것이 프랑켄슈타인이 누워있는 침대 주변에는 이미 감으려고 시도하다가 너덜너덜해진 붕대들이 잔뜩 굴러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붕대를 감아주려다가 실패를 거듭했으면 부상자인 프랑켄슈타인에게 붕대를 감을 줄 아냐고 물어보았겠는가. 게다가 차를 끓이려다가 실패한 모양인지 곳곳에 물기와 엎질러진 찻잎들이 방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프랑켄슈타인은 결론을 내렸다. 이 남자는 귀족 중에서도 정말 손 한 번 까딱 안 해본 귀하신 몸이구나. 그리고 그 추측은 안타깝게도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는 최악의 간병인에게 주워지게 된 셈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은 남자가 건네준 붕대를 받아 말 없이 팔과 복부에 감았다. 다행히 이미 약이 발라져 있어서인지 피는 멈춘 상태였다. 물론 몸을 움직이는 것은 한동안 무리겠지만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 기적에 가까웠다. 사실 숲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했지만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밤에 숲에 머무른다는 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숲의 새벽은 평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추웠다. 그곳을 멀쩡한 상태라면 모를까 몸도 성치 않은 상태에서 머물렀다면 아마 프랑켄슈타인은 지금쯤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못했을지도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남자를 흘긋 쳐다보았다. 남자는 프랑켄슈타인의 옆에 앉아 그가 붕대를 감는 걸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남자에게서 감정을 읽어내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남자의 눈은 건조했으며 얼굴에는 일체의 감정도 드러나지 않아 완벽한 무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왠지 모르게 남자의 기분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자는 무표정했고, 무감각했고, 무감정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겉보기일 뿐이었다. 그에게서 풍겨져나오는 옅은 빛깔의 감정을 프랑켄슈타인은 예민하게 알아차렸다. 애초에 감정이란 것이 없다면 왜 그토록 붕대를 감아주려고 애쓰고, 차를 끓여다 주려고 애쓰고, 약을 찾아주려고 애썼겠는가. 물론 노력이라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는 최소한의 걱정을 해주고 있었다. 그것도 처음 대면하는,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르는 이 성스러운 땅의 '침입자'에 대해서 말이다.

 

침입자라, 씁쓸하게 웃던 프랑켄슈타인은 문득, 아직도 남자의 이름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처음 만난 사이인데 자기소개를 미처 하지 못했다. 남자 또한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에만 집중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이런 상황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생각만 한다는 것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통제를 벗어난 입 때문에 프랑켄슈타인도 당황했지만 남자 또한 놀란 모양인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완벽한 무표정으로 보일 테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어쩐지 그에게서 놀랐다는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름을 물은 것이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이었던가? 남자의 눈에서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자 프랑켄슈타인은 저도 모르게 귀족들에게는 이름을 묻는 것이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름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려는 찰나, 남자의 입이 느릿하게 열렸다.

 

 

"……다."

 

"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물은 것은…, 처음…이다."

 

"……."

 

 

프랑켄슈타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남자는 프랑켄슈타인의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닌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무도 내게 이름을 물어오지 않았다. 이 땅에서, 내 이름이란 어떻게보면 태어날 때부터 듣고 자라는 이름이니까. 설사 모른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내 이름을 모르는 자에게 미리 말해주곤 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이름을 누군가가 알려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당돌하기 짝이 없는 프랑켄슈타인의 말에 남자는 아까보다 약간 눈을 크게 떴다. 남자는 아마 평생동안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남자는 귀족 중에서도 높은, 어쩌면 그들을 지배하는 로드와 거의 비슷한 지위를 가진 것 같았다. 어제 만난 가주와는 풍기는 기운 자체가 달랐을 뿐더러, 품격을 중요시하는 귀족이 이름과 정체를 모두 알고 있으며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자라면 결코 보통 귀족이 아닐 터였다. 그러나 그가 어떤 존재이건 프랑켄슈타인에게는 별 상관이 없었다. 프랑켄슈타인은 노블레스가 아니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이었다. 그에게 남자는 무표정하고, 무감각한 귀족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남자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프랑켄슈타인은 남자에게서 또 다른 감정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놀라움, 망설임 그리고, 기대. 남자는 그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마침내 무겁게 닫혀있던 남자의 입이 열렸다. 프랑켄슈타인은 어쩐지 남자가 조금 떨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은, 카디스 에트라마 디 라이제르다."

 

"좋은 이름이네요, 라이제르. 처음 인사드립니다.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합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망설임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끝에 천천히 내밀어진 손을 맞잡았다. 남자의 손은 차가웠으나 따뜻했다. 프랑켄슈타인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런 감정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에게 이토록 관심이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인간들에게는 동족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으면서 왜 이 남자, 라이제르에게는 이토록 여러 감정이 드는 걸까.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했다.

 

그에게 느끼는 이 감정, 사람들은 이 감정을 호감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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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작성했던 프랑라이 글. 옮겨적으면서 수정하는데 비문에 오타가 너무 많아서 지쳐 죽는 줄;;

원래는 노블레스에서 프랑켄슈타인과 라이의 만남이 나오기 전에 제멋대로 상상해서 적은 연성이었는데

이후 진짜 만남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뒷편이 생략되었습니다.

 

프랑라이 좋아하긴 하는데 라이제르는 너무 다루기가 어려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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